늘샘 2004. 6. 4. 21:14

[향기의 샘]

여행이란 공부


Update : 2004-03-09

흑산도와 홍도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에도 그깟 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서울에서 특별열차 편으로 내려가 목포에서 흑산도행 배를 탔습니다. 밤 내내 기차에서 시달린 탓인지 배에 오르자 졸음이 몰려왔습니다만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잠을 자겠습니까. 멀어져 가는 목포항을 뒤로 하고 115㎞의 뱃길 항해가 파도를 가르며 힘차게 전개되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마치 넓은 보리밭 같았습니다.

파아란 보리밭을 맨발로 마구 밟으며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달려가면 저 끝에서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행은 나로 돌아오기일 것입니다. 섞이고 묻혀져 있던 것들로부터 나를 떼어놓고 혼자가 되어보며 내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었고 그 연결이 어떤 관계를 만들고 있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얽힌 실타래에서 한쪽 끝을 찾아내어 풀려갈 때까지 나가보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때론 삶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명상이고 수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나는 그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 책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것이 좋았다.’

-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

인생이란 공부라지만 여행이야말로 분명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 공부였습니다. 아니 새로운 인식의 순간입니다.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일이란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아주 기본적인 깨달음부터였습니다.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