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샘 2004. 6. 11. 17:36

[향기의 샘]

너무 바빠서...


Update : 2002-04-19

요즘 누구와 만나든 공통적으로 ‘너무 바쁘다’고들 한다. 정말 바쁜 것 같다. 약속을 하더라도 스케줄부터 확인해야 되고, “그래” 라는 답을 듣기 힘들다. 모든 약속은 예약이 되어야만 한다.

내게도 그렇게 바빠서 어떻게 사느냐고들 한다. 일을 좀 줄여보라고 한다. 그러나 줄여보려 해도 줄여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더 일이 생기고, 하나를 어렵게 줄이면 두 가지 일이 불어난다. 책임까지 맡게 되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성경에서 마지막 때의 모습을 그렇게 모두가 바빠진다고 예언한 것을 보며 요즘이 그 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비단 어른의 세계만 그런 게 아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대학 다니는 큰 아이들도 바쁘긴 매한가지다. 우리 집의 경우도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모이려면 밤 11시가 넘어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만일 이 일들을 안 한다고 해서 내 삶에 어떤 치명적인 일이 생기는 것들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안 하려고 하면 안 해도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끊어버릴 수가 없다. 꼭 해야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일들인 것이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모두 다 일 중독, 습관적 바쁨병에 걸려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성취욕이 높은 사람일수록 일을 많이 만들지 않던가. 그러나 내 경우는 그런 성취욕 때문도 아니다. 생색내는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의 일이 더 많고, 내게 실익이 오는 것보다는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다.

약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나 같이 마음 약한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떠맡게 되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로 능력이지, 기실 저들이 볼 때는 바보스러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사하는 것은 그나마 어떻든 쓸모가 있고, 또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 하물며 내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걸 하도록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분명 축복인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도 조금은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정녕 잘 하는 것인지, 그밖에 다른 수가 없는지 말이다.

요즘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아침 해가 서둘러 뜨고, 저녁 해가 미리 지는 일이 있던가. 바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제 자리 제 위치를 제대로 지키고, 욕심 부리지 않고 꼭 할 일만을 한다면 결코 그렇게 ‘바쁘다 바뻐’만을 하진 않을 것 같다. 결국 내 욕심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최원현/ 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