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작은아이의 방엘
들어가 봤다. 밤 11시나 돼야 들어올 테니, 언제나처럼 아이는 없는 채이다. 그런데도 오늘은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 참 묘한 일이다. 달라진
게 없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까. 흐트러진 채 놓여 있는 책들이며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 놓은 옷이며 잡지·시디 등 어제나 다름이 없고, 이
시간쯤엔 당연히 아이도 없는 것인데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아이는 오늘 3주의
일정으로 필리핀의 다바오로 떠났다. 우리의 일상도 조금의 달라짐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빈 것 같고, 아니 집안 전체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의 자리란 있을 때는
모르는데 막상 그 자리가 비고 나면 얼마나 그 빈자리가 큰지 나타나는 것 같다. 작가 정채봉 형이 떠난 후 법정 스님이 작은 책자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내게 보내시면서 함께 넣은 엽서에 ‘채봉 형의 산소에 들러 오는 길인데, 한 사람의 떠난 자리가 어쩌면 이렇게도
크고 깊으냐’고 안타까움을 전해 오셨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 됐다.
또 얼마 전엔 아내의
친구가 몇 년을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던 남편이 급기야 세상을 떴는데, 있으나 마나 했던 그가 막상 떠나고 나니 온 집안이 텅 비어 버린 것 같고
그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서워져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의 자리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도 나왔을까? 오늘 나 또한 아이가 없는 방에서 그가 없다는 것만으로 유난히 커져 버린 빈자리를
본다.
아이는 메시지로 ‘이제
공항으로 떠납니다.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3월에 뵙겠습니다.’를 남기고는 훌쩍 떠났지만, 내 마음은 아이와는 다르게 아무렇지를 못하니
참 별일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다 떠나고
마는 것, 결국 떠난 후의 그 빈자리로 그 사람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지만, ‘있을 때 잘해’란 말이 명답인 것
같다. 오늘은 아이로 인해 새삼 사람의 자리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떠난 후에는 누가 얼마나 빈자리를 느낄까.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essaykorea.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