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들/사랑의향기

참 아름다움을 위하여

늘샘 2006. 7. 17. 22:51

 

[향기의 샘] 참 아름다움을 위하여
Update : 2006-03-21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본능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결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요즘 들어 삶, 곧 생활의 필수가 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선 특히 외모상 풍겨지는 인상이 비즈니스뿐 아니라 모든 관계 맺기에서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의 용모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성형 수술을 하는 병원들은 즐거운 비명 속에 성업 중이다. 거기다 최근 영화 ‘왕의 남자’가 관객 수의 신기록을 세우면서 ‘동안(童顔) 신드롬’에 ‘왕의 남자’ 열풍으로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얼마 전 경희대병원 성형외과가 2000년부터 최근 5년간 실시한 1146건의 미용 성형술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부위별로는 20대는 코, 30대는 보톡스, 40대 이상은 눈꺼풀 처짐 제거술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 시대에서 얼굴이나 몸 가꾸기는 이제 보다 잘 살아가고자 하는 수단이요 전략이 됐다. 문제는 아름다움은 타고난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이 바꾸게 되면서 미에 대한 가치 기준이 지나치리만큼 외형적으로 치우치고 있음이다.

이제는 타고난 아름다움을 선별해 내기도 어렵게 됐다. 예쁜 얼굴을 보면 얼마나, 몇 번이나 수술을 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게 된다. 머리카락 한 올도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전통의 사고들이 정말 대단한 변화를 한 것이다.

사실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외형적 아름다움만큼 우리 내면도 아름다워지고 있을까.

바라건데 외면적 아름다움과 함께 내면의 아름다움도 함께 추구하며 가꿔가고, 외면보다도 내면적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시대가 됐으면 싶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참 아름다운 사람을 소망해 본다.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essaykorea.net

 

행복 상상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


  아이가 눈을 감고 머리 위로 손을 올린 채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고 있다. “얘야 무엇 하니?” 등나무 아래 사각의자에 앉아 하는 아이의 짓이 너무 진지하여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아이가 눈을 뜨더니 싱긋 나를 바라봤다.

 “뭐 했니?” “별을 땄어요” “별? 그것도 낮에?”  “별은 낮에도 있는 거예요.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 네 말이 맞구나. 그런데 무슨 별을 어떻게 딴다는 거니?” ”눈을 감으면요, 별이 보여요. 나는 내가 갖고 싶은 별을 하나씩 딸 거예요.“ “그럼 따 지니?” “아뇨, 따진 못해요. 내 손가락이 닿을라치면 저만치 도망가 있거든요.” 아이 따라 나도 어느새 동화나라에 들어가 있다. 별을 따는 아이, 저 아이의 가슴엔 미움이나 슬픔 같은 것은 없으리라.

  어른들은 하루를 살면서도 수없이 힘들다 어렵다란 말만 되뇌인다.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도 금새 어두워진다. 그러나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면 이내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진다. 

  ‘마봉조침’(磨棒造針)이란 말이 있다. 이태백이 입산 수학 후 하산을 하는데 한 노파가 절구공이를 숫돌에 갈고 있었다. 뭘 하느냐고 했더니 ‘바늘이 없어서 만들어 쓰려고 한다오’ 했다. 이태백은 그 말에 학문을 이을 바늘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신을 보게 되어 다시 산으로 올라가 학문을 이루었다는 고사이다.

  절구공이를 갈면 바늘이 될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 그리고 꿈,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런 꿈을 잃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을 맑히고 믿음을 갖고 눈을 감으면 어른들도 아이처럼 손에 잡히는 별들을 체험 하리라. 행복을 상상하다 보면 내가 행복 속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고, 행복은 그렇게 내가 생각한 만큼씩 내 것이 된다. 밝은 면, 아름다운 면을 생각하며 행복을 꿈꿀 때에 행복은 슬며시 내 안의 자기 자리에 와 앉는 게 아닐까. 아이의 마음으로 행복을 상상하는 것, 행복한 삶으로 가는 문이 될 것 같다.


 

한 잔의 커피 같은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


  여름은 왕성한 생명력의 계절이건만 사람들은 더 많이 지치곤 한다. 더위를 핑계 대지만 실은 몸과 마음이 지쳐있기 때문일 것 같다.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도 혼자임을 느끼는 것도 삶이 힘들어서일 것이다. 거기다 다들 얼마나 바쁜가. 그러다보니 좀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다. 힘이 들어도 지친 어깨를 기댈만한 곳이 없고 따스한 한 마디 위로와 격려가 늘 아쉽다.

  누구 없을까. ‘그래 그래’ 하며 내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는 말에 조용히 맞장구 쳐 주고, 마음에 없는 투정을 부려도 빙긋 웃어주는 그런 누군가 없을까.

  사람은 칭찬 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두 가지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한다. 그건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더 여려지는지 그런데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말에 쉽게 마음을 상하는가 하면 하찮은 일에도 버럭 화를 낸다. 그럴 때면 문득 뜨거운 한 잔의 차가 생각난다. 뜨거움을 다스리며 한 모금의 차를 속 깊이로 내려 보내면 스르르 마음이 가라앉는다. 지쳤을 때도 뜨거운 차 한 잔은 큰 힘이 된다. 백 마디의 위로보다도 더 절실하게 가슴을 타고 흐르는 위로가 된다. 차 한 잔의 행복,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갈무리 하며 산다.


  늘 내 곁에/뜨거운 고통을/매혹의 향기로 뿜어내는/한 잔의 커피 같은/그대가 있습니다//펄펄 끓는 물에/형체도 없이 녹아져서/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듯/그대는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모든 것을 버립니다//살아가는 것이/힘들고 지칠 때에/한 잔의 커피를 마시 듯/그대의 위로를 마시면/새 힘이 넘칩니다// (손희락의 <한 잔의 커피 같은 그대> 중)


 햇살이 따가운 날에도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한 잔 차 같은 이름 하나씩을 찾아보면 어떨까. 어떤 이름은 빙긋이 미소가 돌게 하고, 어떤 이름은 그냥 마음까지 든든케 해 주고, 어떤 이름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그런 이름 하나씩 떠올려보면 가슴엔 뜨거운 차 한 잔 같은 여유와 사랑과 평안이 흐르지 않을까.

 누구에겐가 한 잔의 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알 수 없는 후회가 뜨겁게 목울대를 타고 흐른다. 급히 넘긴 한 모금의 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