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행사들/디카에세이

고향초 모시풀

늘샘 2009. 8. 10. 18:36

우리집 베란다에는 아주 작은 밭이 만들어져 있다. 거기엔 내 늘 고향냄새를 맡듯 바라보는 모시풀이 있다. 내가 중학교까지 다니던 전라도 촌마을의 우리집 장독대 옆에 심었던 것인데 한 이십년쯤 지나 가보니 집은 간데 없고 콩밭으로 변해 있는데 장독대가 있었음직한 부분으로 어림으로 찾아가보니 콩밭 한 가운데 아닌게 아니라 모시풀이 콩처럼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손으로 모시풀의 뿌리를 몇 포기 뽑아 가져다 아파트 옥상의 흙밭에 심었었다. 그런데 옥상 방수작업을 한다며 모두 철거해 버리는 통에 부득이 아파트 앞 공터에 옮겨 심어놨는데 어느 날 보니 하필 그 자리에 누군가 무얼 심으려는지 모두 뽑아내고 밭을 만들어 놓았다. 혹여라도 뽑아버린 뿌리가 어디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해서 작은 뿌리라도 묻혀있으면 다음 해에 싹이 나지 않을까 기다려봤지만 허사였다.

 안타까움을 감당치 못하고 있는데 밀양엘 갔더니 박물관으로 오르는 길가에서 모시풀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너무나 반가워 두 뿌리를 캐어다 지금의 베란다에 심어놓았던 것이다.

 얼마나 실하게 잘 자라는지 모른다. 이파리를 따서 모시잎 떡을 해먹자고 했더니 아내는 삭막한 아파트에 그만한 푸른 기운을 놔두는 게 좋지 그걸 없에겠다 한다고 지청구를 한다. 하기야 고향의 맛 내 어린 날의 맛을 한 번 보고싶어 하는 마음이나 씩씩하게 자라는 이파리를 보는 것이나 그게 그거일 것 같아 못 이기는 척 하고 있다.

 

 원래 모시는 저마(苧麻 / ramie / Boehmeria nivea)라고 하며 줄기로부터 길고 강한 섬유를 뽑아내는 쐐기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땅속 줄기가 많아 어디서나 1.5~2m로 곧게 자라며, 섬유 작물 중 가장 오래 된 작물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에선 고려 때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온난하고 습윤한 곳에서 잘 자라며 따뜻한 곳에서는 연 3회, 열대에서는 6회를 수확할 수 있는데 내 어릴 때만 해도 중요한 옷감 재료로 모시를 베어다 옷감까지 만드는 과정을 보아온 터이다.

 내 어머님이 길쌈을 잘 하셔서 유품으로 모시베 한 필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가 어느 해인가 외할머니께서 너무 오래 두면 좀이 쓴다고 잠방이를 만들어 주셔서 입었던 기억이 안다.

 내가 향수보다 더한 그리움을 불러오는 식물이다. 그 식물을 내가 이만큼 애지중지 하는 것도 혹여 날아가버릴 지도 모르는 내 그리움의 한가닥을 잃고 싫지 않음이다. 그런데 녀석들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양 잘도 자라주고 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러고 보면 식물도 말을 알아듣고 교감도 되나보다.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 잘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