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 여름의 피서 - 최원현
그 여름의 피서
최원현
그해 여름 우리는 동해로 향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장인 장모님, 그렇게 넷이서 복잡함을 피한다고 방학이 끝난 다음 날을 택해 떠났다. 우리의 계획은 양양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 그러나 두 노인을 모시고 떠나다 보니 피서라기보다 효도여행 같이 되어버려 그만큼 노인들의 건강과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특히 아무리 좋은 뜻으로라고 해도 노인들이라 여행 중 너무 힘이 들거나 탈이라도 나게 되면 후에 다른 형제들의 집중 원망도 들을 수 있는 일이다. 나도 아내도 그런 점에 먼저 마음이 쓰였다.
여든의 두 노인을 모시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조심스러웠다. 오고가는 길만이 아니라 드시는 것, 주무시는 것까지 집을 떠났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예상 못할 변수들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난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 부모님과는 여행을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선지 장인 장모님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 번쯤 우리 부부만이 모시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도 기회도 쉽지 않았다. 먹고 사는 일이 늘 우리를 긴장시켰을 뿐 아니라 아이들과 우리끼리는 그래도 쉽게 움직여지지만 어른들과의 동행은 아이들의 사정까지 고려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이들은 빼고 한 해라도 빨리 두 분과만 시간을 갖자고 했다.
서울에서 아산까지 내려가 모시고 와서 여행을 한 후 다시 모셔다 드려야 하는 꽤 긴 여정이다. 두 분은 아주 좋아하셨다. 시절이 좋아진 덕에 여러 가지 기회들도 많아 오히려 여행은 우리보다 더 많이 다니셨다지만 그래도 딸과 사위가 오붓하게 모신다니 그리 좋으신가 보다. 가는 중에 먹을 것을 준비하는 아내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여행은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이다. 잘 아는 곳이라 해도 여행으로 찾아갔을 땐 새로운 풍경과 만난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한데 어른을 모시고 떠난 길이어서인지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다행히 가는 길에선 식사도 잘 하시고 기분도 좋으셔서 우리 마음도 가벼웠지만 오후부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뙤약볕보다는 비가 내리는 날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어제보다 몇 배나 강한 빗줄기에 바람도 드셌다. 다행인 것은 두 어른 모두 비가 내리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으심이다. 덥지 않아 좋다 하신다. 바람 때문에 우산을 제대로 받칠 수 없는 것이 흠이었다. 화진포에서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을 들렀더니 유난히 좋아 하신다. 그 분들 삶 속에서 가장 크게 인식되는 역사의 줄기였던 것 같다.
장인어른은 6.25남침에 맞서 국군으로 싸우셨다. 갓 태어난 딸을 뒤로 하고 전쟁터로 나갔었는데 그런 중에도 휴가는 있었는지 잠깐 나온 휴가에 내 아내가 생겨나 그 전쟁 중에 태어났단다. 이승만과 김일성, 분명 장인이나 장모님 모두에게 사상을 떠나서 모두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친 잊지 못할 사람들이었을 게다.
빗속의 여행은 사람을 더욱 감성적이게 만드나보다. 거기다 마음도 느긋해 지고 음식점에도 사람이 거의 없어 아주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나도 복잡한 때를 피해 피서를 떠나는 편이었지만 사실 한창 더울 때는 직장의 사무실에 있는 게 가장 좋은 피서다.
비오는 날의 여름 바닷가는 또 다른 세계였다. 물 위로 떨어지는 비는 파도와 장난을 친다. 짭짜름한 바닷물에 떨어진 빗방울들이 깜짝 놀랐을 게다. 자기들과 같을 줄 알았는데 뭔가 다른 형질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두 분께 우산을 받쳐드리며 바라보는 바다에서 수많은 손짓들을 본다. 반갑다고 하는 인사일까, 잘 가라는 인사일까, 다시 또 오라는 손짓일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손, 손의 물결들이 다가오는가 하면 멀어져 가고 멀어져가나 싶으면 다가오는 반복 속에 그렇게 추억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 추억에 잠겼다.
피서란 더위를 피하는 것이지만 더위를 즐기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이리라. 무더운 날 한차 땀을 흘리고 나서 샤워를 하면 몸도 정신도 더없이 맑아지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번은 땀은 커녕 오싹 냉기가 들만큼 시원하다. 비바람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 동해 쪽은 여름에도 분명 시원한 것 같다.
하조대에서 낙산사로 내려와 평창을 들러 한 바퀴 도는 동안 여름이 조금씩 밀려가고 있는 걸 느꼈다. 삼라만상 자연의 질서는 이리 정확히 사람을 돕고 있는가. 그 하루하루의 차이가 질서를 보게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의 여름 피서가 가장 멋진 피서였던 것 같다. 몸의 피서가 아니라 마음의 피서였다. 어른을 모시고 떠난 효도여행의 그 해 여름에 나는 그 덕택에 맑아지고 시원해진 정신과 몸이 되었다.
피서가 못 되었으면 어떠랴. 삶 중에 이만큼 감사하고 보람된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한데 이제는 마음도 시간도 되지만 다시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이 안타까움을 어찌 할고,
월간 <수필문학> 2013년 7월호
최원현 www.essaykorea.net
수필가. 문학평론가.《한국수필》로 수필, 《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사)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사)한국수필가협회 감사,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한국수필작가회 회장(역임),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수필분과회장,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 수상. 수필집으로 <날마다 좋은 날><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문학에게 길을 묻다> 등 1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