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들/마음의 향기

시를 읽으며

늘샘 2010. 7.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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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1월2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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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으며

[최원현]

문우가 시집을 보내왔습니다. <노랑꽃 엄마꽃>이라는 다분히 동시집 같은 제목인데 '어느 봉쇄수도자의 기도시집'이란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세상과 분리

▲ 최원현 수필가
되어 삶을 사는 한 수녀가 노트에 일기처럼 쓴 글들이라고 했습니다.

시집을 펼쳐 읽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맑아지는 걸 느낍니다. 천진한 아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너무나도 순박한 시, 아니 시라기보다 때묻지 않은, 이슬같이 영롱한 맑은 생각이요 마음들입니다.

시에서는 향기가 났습니다. 풀 냄새도 나고, 고추냄새도 나고, 연시감 냄새도 나고, 파 냄새, 밤 냄새 그리고 귀뚜라미 개미 소 비둘기 까마귀에 작은 물방울까지 사랑의 냄새를 냈습니다.

세상과 격리되어 수도의 길을 걷는 그의 목표는 어디일까요? 어쩌면 이보다 더 천진해 지는 것이 아닐까요.

나뭇잎에 매달린 
한 방울의 빗방울만큼 
순수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 <순수>

어느 풀인지 
낫이 스칠 때마다 
진한 내음이 난다 
죽어서 향기로운 
풀아 
           ― <풀 내음>

보고싶다는 말은
아름답다
내가 누군가를
보고싶어 하는 것도 아름답고
누군가가 나를
보고싶어 하는 것도 아름답다
보고싶다
그것이 사랑이다

           ― <그리운 사랑이라>

그가 보는 모든 것들은 눈으로보다는 마음으로 보는 것들이었습니다. 그의 따스한 시선이 스치기만 해도 이내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끌어안으려는 순수한 사랑의 넘침이었습니다.

시들을 읽으며 삶은 바라보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인이란 이름이 붙어버리면 이미 시를 만드는 시인이 되지만 순수한 눈과 가슴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보이는 것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타고난 시인의 몫일 것입니다. 시를 읽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시인의 생각, 마음으로 살고싶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이 맑아지는 시들을 읽으며 아름답게 바라보고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새삼 못내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 최원현 
수필가.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수필집『서서 흐르는 강』(선우미디어 刊) 수록]

 
최원현 수필가
서서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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