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들/수필의 향기

[스크랩] 참‘맑은’수필 최원현의 <어머니의 섬>

늘샘 2014. 1. 26. 23:44


세르비아


참‘맑은’수필
최원현의 <어머니의 섬>

이 병 용
(문학평론가. 시인)

참 맑은 수필을 읽는 것은 맑은 날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맑은 날씨가 제일 많다. 혼돈의 특성은 어둠이다. 우주로부터 혼돈이 사라지려면 먼저 어둠이 없어져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은 생명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 먼저 빛을 창조하시어 그 어둠을 몰아냈다. 또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참 ‘맑은’ 영혼이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뜯겨나간 달력이 인간의 욕망을 달구어 역사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 천년’ 문학에 나타나는 ‘불안한’ 징후들도 ‘맑은’ 정기 속에서 정화되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날이 흐리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욕구가 생겨난다. 한국 경제가 어려워 면서 민생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만 가고,‘이라크’파병은 에상한 대로 또 다른 불씨로 번져가고 있다. 무엇보다도‘과거청산’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급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정체성의 혼란과 맞물려 갈등과 불화를 증폭 시키고 있다. 우리는‘과거’와‘현재’의 탁음(濁音)을 미래’의 청음(淸音)으로 바꾸는 시대의‘전환적’시점에 서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현상의 일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문학이 그 일기의 변화를 위하여 중대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달의 수필 중 참 맑은 수필이자, 이 달의 백미로 꼽고 싶은 작품은 단연 최원현의 <어머니의 섬>과 유동림의 <꽃 튀김>이다. 최원현은 세상을 등진‘어머니’의 추모예배에서 해가 갈수록 또 세월이 바꿔놓은‘사실’을 직시하고자 하는‘그리움 병’을 토로하고 있다.

“ 어머니는 내게 분명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란 이름의 내 유일한 도피처다. 내가 숨어있을 수 있는 오직 하나 믿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사실은 내가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처지에서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어머니였던 것이다. 비로소 내가 흘러가고 있다는 실체를 알게 된다. 그것은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거대한 바다에 떠있는 섬이었다. 처음엔 그 섬이 어머니인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나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띄워놓은 ‘나’라는 작은 섬이었다.”(월간문학 2004.10월호 p 226-227)

위 글에서‘그리움 병’을 존재의‘불안함’의 다른 이름으로 진단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는‘시공간’의 간단없는 이동을 시작하여 이제 존재의‘아웃사이더’가 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표현을 빌면‘거대한 바다에 떠있는 섬’과도 같은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생명의 근원에 이르는 영원의 숨결로 등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은 언어의 끝없는 유희이지만 그 세계는 감동적이다. 문학‘안’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숭고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을 순수하게 감상하는 것이다. 그‘열림’의 순간에 언어는 무수한 의미를 쏟아내고, 참‘맑은’문학은 그 언어의 생명을 지킨다. 나는 이번 월평에서 너무나 맑아서 깊이 들이쉴 수 있는 그런 수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쉬는 숨으로‘온당한’평을 써보려고 했지만 그 숨이 고르지 않았다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2004. 10월 <월간문학> 수필 월평(월간문학 2004.11월호 p223-225)


출처 : 알프스의 눈동자. 데보라의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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