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조선문학/2009.8월호 수필월평(1)/
수필은 관조와 체험의 문학
최원현/수필가. 문학평론가
nulsaem@hanmail.net
어느덧 수필가 5천명의 시대이다. 열여덟 개 수필전문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합문학지들에서 1년에만도 5백 명이 넘는 수필가가 쏟아져 나온다. 가히 수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전문지와 종합지를 통해 발표되는 수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수필집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한 달에 내게 보내져 오는 수필집만도 10-20여권씩이 된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그게 꼭 즐겁고 행복한 것만이 아닌 것은 그 속에서도 늘 부족한 그 무언가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움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부끄러움이 되기도 한다. 후회하는, 차라리 하지 말 걸 하는 아쉬움이 더 커지는 그런 현상을 사실 나도 수차례 겪었었다.
문학의 본질은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미의 세계 곧 아름다움의 추구다. 그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올까. 진실에서일 것이다. 눈으로 보고 느끼는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세계, 문학의 미는 바로 이런 공감과 감동의 미다.
그렇기 위해선 문장을 통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과 문학적 상상력을 던져 줄 수 있는 의도 된 장치가 필요하다. 문장력이고 표현력이고 구성력이다. 체험적 진실을 중시하는 수필에서도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의 사실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꾸밈없이 표현되되 문장력을 통한 형상화와 의미화를 통해 독자에게 자연스런 공감과 동감과 감동을 유발 시키는 것이다. 사실에만 치우치거나 해석이나 설명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정보나 지식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실용적 산문일 것이다.
조선문학 2009년 8월호(통권 220호)에는 세 편의 수필이 실려 있었다. 삶의 연륜이 깊고 높으신 분들의 작품이다. 해서인지 전개가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지적(知的)·객관적, 사회적, 논리적 성격을 지닌‘소평론’곧 에세이적인 작품들이다.
소설은 읽고 나서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데 반해 시나 수필은 아름답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것이 정서적이든 내용적이든 관계없다. 그렇다고 신문칼럼이나 논문을 읽고 아름답다고는 하지 않는다. 헌데 수필을 읽고나서 참 아름다운 작품이다 라고 하면 작가도 대단히 좋아한다.
수필은 대표적인 자기 고백적 문학이다. 곧 진솔한 나의 성찰이다. 내 삶의 이야기가 문학적 표현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된다. 자기 고백적인 글이 이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려면 인간 삶의 보편성을 담은 이야기일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필의 정격에 맞춰볼 때 8월호에 실린 세 편의 수필은 어떠한가.
김려성님의 <색다른 결혼식>은 봄 어느 날 손자뻘 되는 아이의 결혼식 소감을 수필로 쓴 것인데 축가와 깜짝 이벤트에서 보고 느낀 바를 고래(古來)의 결혼 풍속을 살펴보면서‘에세이적’으로 쓴 작품이다.
나 역시 몇 번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요즘 결혼식엔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돌출 행동들이 연출되곤 한다. 키스는 보통이고 체력 테스트도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이 수필에선 참으로 재미있게 펼쳐 보일 수 있는 내용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재미있게 읽혀지진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서두부터 전반부를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 혼인의 정의 및 개념, 혼인례에 대한 설명들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목이 <색다른 결혼식>이니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결혼과 다른 무언가를 제시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 하나만 치면 거기에 관련한 너무나 상세한 자료들이 나타난다. 구태여 혼인에 대한 개념 정리를 15매 내외의 수필 한편에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넣는다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말을 할 기회 내지 공간을 잃고 만다. 제목에 맞게 쓸 수필이라면 오히려 작가의 결혼은 50여 년 전일 텐데 그 때 작가의 결혼식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추억하며 달라진 지금의 결혼 풍속도를 살펴보는 것이 훨씬 맛깔스럽고 정겨운 수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진다. 그리고 시작도 그렇지만 마무리 부분도 독자가 들어갈 여유를 조금도 주지 않고 결론을 도출해 버린 것은 독자를 내 생각에 강요하는 것으로 수필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가정은 양기(陽氣:즐거움) 생활의 최소단위이다. 유엔 인권선언 제19조는 가장이라는 것은 ‘인간생활의 기초단위“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좋은 가정을 이루도록 유도할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멋진 사람이다. <색다른 결혼식> 중
이러한 생각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것이기 보단 독자가 작품을 읽고 난 후 느껴지는 것으로 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홍성윤님의 <자유와 질서, 그 갈등> 또한 앞의 작품 성향을 닮았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가장 인간답다고 할 수 있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할 때 가장 행복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질서가 유지될 때 가장 사회답다고 말할 수 있으며, 법과 규범이 준수될 때 가장 안정스러운 사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단정적 표현들은 수필의 맛을 많이 떨어뜨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필은 내 생각을 읽는 이에게 설득 시키거나 강요하거나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생각, 사상, 철학을 수필이란 멍석 위에 펼쳐놓고 그걸 보는 이들이 아무 부담 없이 보면서 겉으로는 표현치 않더라도 자기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나누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유와 질서,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헤어질 수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같이 할 수도 없는 갈등은 잘 표현되었다고 하나 수필은 자기 체험이 주가 되는 것으로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볼 때 문학지 속에 들어있는 문학적 수필로는 아쉬운 감이 있음을 어쩔 수 없다.
최상진님의 <미물>(微物)은 소재와 주제에서 위의 두 작품과는 구분되는 작품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을만한 도입부도 그렇고 이야기의 전개도 흥미롭다. 이러한 소재를 수필화 한다는 것은 구성과 표현에서도 상당히 어려울 수 있는데 이를 비교적 잘 극복한 결과다.
어금니와 사랑니 사이에 끼게 된 이물질이 처음엔 상쾌한 존재감을 주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고통을 주는 상대로 변하게 된다. 결국 어금니와 사랑니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될 상황에서 작가는 부모님의 은덕을 내세운 의사 앞에서 마음의 결정을 하고 사랑니를 제거하기로 한다. 그런데 작가는 사랑니에 진한 애정을 갖는다. 그래서 잘 빠지지 않는 것마저도 자기의 무고함을 강하게 항거하는 것으로 보았고 이빨에도 신경이 있다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안타까워도 한다.
그런 그의 마음은‘세상 이치가 다 그러려니 하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힘든 것은 무조건 피해야겠다는 깊지 못한 처신을 탓하면서 미물에 대한 그리움과 산화한 사랑니의 애틋한 사랑을 곰씹어 본다.’로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제목인 <미물>부터 미물(微物)에 대한 이해가 확연치 않다. 미물(微物)이란 사전적 의미로 해석한다 해도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 벌레 따위 작은 동물, 변변치 못한 인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등으로 이해가 되는데 이빨 사이에 끼는 그것을 미물이 아닌 다른 표현의 상큼한 제목으로 했다면 훨씬 좋은 수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도‘미물’이고 내용 중에서도‘미물’이 수없이 나오는 만큼 제목이 주는 신선감이나 내용이 주는 참신함이 다같이 반감되었다 하겠다.
이상 세 편의 수필을 살펴보면서 수필이 독자에게 즐겁게 읽히기 위해선 수필의 본령이랄 수 있는 체험과 관조가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필은 한마디로 1인칭 고백체의 글로 일차적인 자신의 삶의 체험을 통해 작가는 자연스럽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체험을 토로하게 되고 독자는 이러한 작가의 삶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봄으로써 각자의 인생체험과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이게 바로 체험의 문학으로서의 수필인 것이다. 또한 수필은 사물과 인생에 대한 관조의 내용을 담게 되는데 곧 사물과 인생을 문학의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물로 여기서 수필의 운치와 여유가 생겨나게 된다. 즉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물과 인생에 대해 나름의 시각과 개성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독자를 사유의 숲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수필은 그렇게 관조적인 자세로 자아와 사물을 통찰하는 글이다.
삶의 연조가 높으신 분들인 만큼‘혼사’나‘자유’나‘질서’등에 대한 체험적 삶의 이야기들이 살아온 삶만큼의 사유와 관조로 독자에게 나아갔다면 훨씬 더 향기로운 수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고 만다. 그러나 평이란 고급독자의 주관적인 의견일 수 있음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최원현 essaykorea.net
수필문우회원. 한국수필가협회·한국수필문학진흥회·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수필분과회장,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수필세계·좋은문학·건강과생명 편집위원,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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