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연구』에서 "문예지의 현황과 위상"이라는 기획특집을 엮었습니다. 1960~70년대의 한국문학의 양대산맥을 형성한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에 대해서 한강희님의 평론과 함께 문예지의 발전에 대해서 생각해보시죠.
1960〜1970년대 한국문학 양대 산맥의 형성과 분화 / 한강희
-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을 중심으로
1. 1960년대 문학의 대두와 비평의식의 양립
1960년대 비평론은 이전 세대인 1950년대에 비해 양적 팽창과 질적 심화를 보인다. 4·19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던 평단은 65년을 전후해 급속히 성장하게 된다. 문학에 대한 열기가 작품으로 쏟아져 나오고 새로운 비평적 인식과 기운이 새 세대의 비평이념에 걸맞은 비평론으로 표면화한다. 특히 비평가 상호간의 이념적 간극을 뛰어넘어 문학적 소통이 가능한 구조적 장치로서 잡지 동인同人을 형성하면서 비평론은 더욱 활성화된다. 주지하다시피 60년대 비평가의 유형화는 이때를 전후해 본격 활동한 비평가를 중심으로 시도할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비평적 구도는 크게 세 가지 형태-『68문학』 계열, 『창작과 비평』 계열, 『강단학파』 계열-로, 한편 그 밖의 비평가군으로 여타의 문예지 및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비평가군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 중에서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이르는 동안 논쟁의 형태가 비교적 선명하게 부각되는 계열이 66년 출범한 『창작과 비평』 계열과 70년 『문학과 지성』으로 이어진 『68문학』 계열이다.
물론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비평의 구도는 크게 보아 이보다는 순수-참여의 구도로 구획하는 것이 바람직한 면이 있지만 정점에 이른 비평 동인의 이념을 통해 비평론을 일별하는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한편 두 동인이 가지고 있는 다수 비평론은 60년대 비평론의 세 가지 국면인 전통론·세대론·참여론은 물론 리얼리즘론과 민족문학론과도 일정한 연관을 갖고 있다. 이 두 잡지 동인은 60~70년대 문화계를 풍미한 대표적인 문학동인으로 대립적인 색깔을 보여주며 비평의 주류적 유파를 형성하고 창작문학의 분위기와 흐름을 선도하는 데 구심적 역할을 한다.
1) 『창작과 비평』과 『68문학』의 양립 구도
1966년에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분단 이후 전개되어 온 비평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상징적 의미를 띤다. 이 시기 『창작과 비평』이 이뤄낸 성과는 작게는 작가의 사회적·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에서부터 1970년대 초에는 시민문학론을 제기하고, 곧이어 민중의 개념을 문학의 중심부로 끌어내는 등 진보적 문학의 중추역을 도맡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창작과 비평』은 1950년대 이후부터 계속 논의되어 온 민족문학론을 총체적으로 수용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지만 참여-순수논쟁의 발전적 계승을 통해 70년대 이후 리얼리즘론-시민문학론-민족문학론-민중문학론-제3세계문학론을 주도하는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의 비평이념 및 편집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낙청이 1966년 발표한 「새로운 創作과 批評의 姿勢」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창작과 비평』의 성격은 창간호에 실린 백낙청의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 간명히 집약돼 있다. 그는 여기서 60년대 중후기 비평의 쟁점인 순수-참여론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동시에 문학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순수문학의 이념을 프랑스 혁명 이래 득세한 유럽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로, 또 플로베르식의 영세적 순수주의를 그 퇴폐적 단계로 보면서 중산계급의 발전을 이룩해 본 일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학의 사회기능을 부정하는 부정적 기능이라고 파악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순수주의를 고집하는 입장은 서구 예술가들의 경우와도 또 다르다. 건실한 중산 계급의 발전을 본 일 없는 한국사회에 유럽 부르주아 시대의 예술 신조가 뿌리박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금과옥조인 양 내세우는 것은, 제대로 정리 안 된 전근대적 자세를 제대로 소화 못한 근대 서구예술의 이론을 빌려 옹호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것은 정치·경제 면에서, 유럽 중산층의 정치·경제 이념을 핑계로 한국의 후진적 사회구조를 견지하려는 것과 정확히 대응되는 현상이다.”
이 글에서 백낙청은 이전의 순수-참여논쟁을 조악한 관념과 소재주의의 결과라 비판하면서 당대 문학인들에게 예술활동의 자율성과 문학의 역사적·사회적 기능의 본원성을 기초로 한 새로운 문학적 실천의 길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의 기조는 『창작과 비평』의 비평적 이념의 단초를 이루는 것이자 편집 방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소론은 과거의 선동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의 순수문학에 대한 소박한 차원의 비판이 아닌 서구의 진보적인 예술이론과 근대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것이어서 균형감과 함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순수문학 비판과 함께 역사주의적 문학비평의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즉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사회적·사상적 배경에 의해 정해 버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참여론자들이 작품의 비평에서 소재 본위나 피상적 경향성 본위의 도식화에 그치고 있다며 이미 지적한 순수비판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참여론에 대한 당위성은 참여론 자체의 반성 위에서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윤식은 『창작과 비평』의 성격을 ‘사르트르의 관점에 기대고 있다.’, ‘문인의 위치를 지식인의 자리로 격상시키고 있다.’, ‘주자학적 세계관인 아비의 사상과 닮아 있다.’고 진단하고 지식인의 소임을 내세우긴 했으나 그 설명이나 태도 표명이 선명하지 못했다. 즉 문인과 지식인의 주종관계에 관한 자각도 없었으며,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통로 설정에 관한 방법론도 없었던 시점에서 “66년에 머리를 내밀었을 때 아무도 이 얄팍한 계간지 속에 60년대 문학을 폭파하고도 남는 폭약이 장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창작과 비평』의 창간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편 『문학과 지성』은 『창작과 비평』이 활성화되면서 이에 대응할 만한 계간지로 나오게 된다. 즉 『창작과 비평』의 활성화가 이 잡지의 간행을 가속화하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문학과 지성』의 탄생은 이미 그 전신인 『사계』(64)-『산문시대』(66)-『68문학』(69)7)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김현이 썼다는 『68문학』의 창간사에 해당하는 「편집자의 말」은 이미 이전의 잡지 창간 때 보여 준 편집자적 방향[기술태도]이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그 시대를 진정한 의미에서 체험하고 그 시대의 병폐와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시대를 위기의 시대로 파악한다. 저마다의 세대는 저마다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그 시대의 현실, 그 세대의 피부를 핥고 뼛속을 갉아낸, 그리하여 의식의 심층 깊숙이 인각印刻을 찍은 그 시대의 현실을 내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태초와 같은 어둠 속에 서 있다.’ 젊음의 이상과 환희가 충만되었던 시절, 우리는 이렇게 적었다. 그 ‘태초와 같은 어둠’이 정당한 의식의 조작을 거친 후에 지적인 표현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우리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생각을 의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때부터 항상 염두에 두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토속적이며 비합리적인 세계에 흡수되어 샤머니즘의 미로를 만들어도 안 되었고, 관념적 유희를 즐기게 되어 현실 밖에 우리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어떤 가상의 제국을 만들어내어도 안 되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위기를 샤머니즘적인 것과 관념적인 유희와 비슷한 것이 되는 대로 결합하여 빚어내는 정신의 혼란상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건전한 논리의 도움을 얻어 극복하는 길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깨닫고 있다. 정말로 우리가 그 일을 맡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 일을 맡을 수 있을 것인가? 저마다 자기의 변명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한 시대의 인각이 찍힌 한 그루우프는 자기의 사명을 내버린 데 대한 변명을 해낼 수 없다. 그것은 자기 세대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박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자유롭게 행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신의 리베랄리즘이 더욱 팽창하기를 희망한다.”
다소 장황하게 보이는 위의 글은 문구뿐만 아니라 내용 및 취지가 『산문시대』의 서문과 거의 닮아 있다. 세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줄곧 표나게 내세우고 있거나, ‘젊음과 이상과 환희가 충만되어 있던’ 『산문시대』 시절에 외친 ‘태초와 같은 어둠 속’을 걷어 젖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캐치프레이즈가 동어반복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비록 60년대 말 박태순이 『68문학』과 취지를 달리하거나, 염무웅이 『창작과 비평』으로 옮겨가지만 이 동인의 문학적 이념, 비평정신의 추구는 『문학과 지성』으로 전이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문학과 지성』은 『창작과 비평』보다 4년 뒤진 창간연도만 70년도일 뿐, 이미 그 계보는 『사계』(64), 『산문시대』(66), 『68문학』(69) 등의 연계하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활동 연도나 작품의 발굴 및 게재량은 『창작과 비평』 못지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68문학』의 서문에 나타난 비평적 취지는 이전의 『산문시대』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문학과 지성』에도 그대로 연장된다. 우선 『문학과 지성』의 창간사 전문前文을 살펴보자. 이 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한국인의 의식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는 병폐는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에서 연유하는 정신적 복합체라 할 수 있다. 심리적 패배주의는 우리 현실의 후진성과 분단에서 얻어진 허무주의의 한 측면으로 한국인을 억누르고 있는 억압체이고 정신의 샤머니즘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의 분석을 토대로 어떠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다. 이러한 병폐를 제거하여 객관적으로 세계 속의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기를 희망한다는 결론을 짓고 있다.
둘째는 진정한 문화란 정직한 태도의 소산인바, 우리는 정신을 안일하게 하는 모든 힘에 대하여 성실하게 저항해 나가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폐쇄된 국수주의를 지양하기 위하여 한국 외의 여러 나라에서 탐구되고 있는 인간정신의 확대의 여러 징후들을 정확하게 소개, 제시해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의 문화풍토에 어떠한 자극을 줄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위의 요약분은 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설정하고 문화적·지성적 차원에서 『문학과 지성』을 통해 극복·탐구·구현하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즉 『산문시대』, 『68문학』의 문학적 이념과 기조를 같이하고 있는 『문학과 지성』의 창간사 전문은 『문학과 지성』과 그 동인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편집자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김현이 내세운 위의 언급에 대해 잡지 창간에 깊숙이 관여한 김병익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분단의 현실에서 빚어진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을 극복하고 투철한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억압과 폐쇄주의를 탈피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사회사·문화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홍정선은 문학적인 입장에서 “문학을 질식시키는 도그마적인 발언에 대한 분노와 새것 콤플렉스라고 명명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에 대한 혐오”에서 나온 것이라고 창간 배경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창간사에서 보여준 순수-참여에 대한 편집자적 태도도 『문학과 지성』의 편집 방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편집자는 전문에 이어지는 편집 내용에 관한 소개에서 70년 상반기에 다룰 소설 텍스트를 거론하면서 양자를 함께 공격하고 있으면서도 다분히 참여 쪽을 염두에 두고‘한국문학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어 온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대립과 지양’이라는 과제를 설정하는 한편, ‘이 양자 간의 대립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리얼리즘을 유일한 기술방법이라고 주장하는 도식주의자’, ‘참여라는 이름 밑에 행해지는 문학행위의 비열함’ 등 거침없는 ‘재단비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참여론과 배치되는 성격으로서 개인의식과 지성, 자율성과 미학적 입장을 공고히 하려는 『문학과 지성』의 편집자적 방향과 비평적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념과 노선에 대해 대타적 입장에 있는 비평 일방을 공격하는 것으로 객관적·거시적인 입장의 편집자적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김병익은 박순녀의 소설 「어느 파리」를 분석한 비평문인 「정치와 소설」에서 문학이 문학의 질서 위에 서 있지 않을 경우 참여라는 매력 있는 구호도 화석화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학의 정치화를 배제하고 정치를 정당하게 문학 안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참여론의 폭을 제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 소론의 초점도 크게 보아 김현의 논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요컨대 편집 태도, 비평 이념의 추구에 관한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문학과 지성』의 출범은 『창작과 비평』을 견인하는 한 축으로서 자유주의 지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김윤식은 『문학과 지성』의 태생을 두고 ‘사생아적 세대가 스스로 아비가 되는 과정’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연기를 하기 시작하여 연기를 버리는 순간, 이청준과 김주연이 이에 가담하여 『68문학』을 간행, 여기에 김병익이 가담하고서 『문학과 지성』이 탄생, 이때가 70년대의 문턱으로, 결국 60년대는 『문학과 지성』을 낳기 위한 준비기간이 되었던 셈”이라며 60년대적 무게를 이 잡지의 탄생에 실어 주고 있다.
다음으로 두 잡지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통해 그 성격을 짐작해 보기로 하자. 『창작과 비평』은 60년대 중반 이후에 제기된 일련의 논쟁에서 참여론과 사실주의와 민족문학론을 제창하고 있으며 당연히 작품의 성격도 하층민의 삶이나 농촌·도시 노동자의 생활을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범위도 소설·시뿐만 아니라 역사·사회과학에, 국내 문제에서 시야를 확대해 국제 문제, 제3세계 문제까지 걸쳐 있다. 60~70년대 주요 필진으로는 시의 김광섭·김현승·김수영·신동엽·조태일·신경림·고은·김지하·김남주·이성부·정희성·문병란·이시영, 소설의 김정한·이호철·조태일·천승세·방영웅·이문구·서정인·송영·송기숙·황석영·박완서·박태순, 비평의 백낙청·염무웅·최원식 등이 있다.
이에 비해 『문학과 지성』은 이데올로기 쪽보다는 문학 자체의 이론과 예술 일반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산문시대』, 『68문학』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60년대 중후반에는 굳이 『창작과 비평』과 견줄 필요가 없을 만큼 ‘60년대 문인’ 대다수를 필진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반은 70년대 『문학과 지성』이 출범하고서도 시의 김춘수·박재삼·황동규·정현종·오규원·김광규·마종기·김형영·김명인, 소설의 황순원·최인훈·이청준·김원일·조해일·조선작·최인호·윤흥길·송영·홍성원·조세희·한승원·박상륭·오정희, 비평의 김주연·김치수·김현·김병익·오생근·김종철 등으로 폭넓은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태도는 여러 평자들에게 대체로 비슷하게 개념화되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인식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문학에 접근해 나가려는 태도와 완전히 미학적인 태도에서 문학작품에 접근해 나가려는 태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문학과 지성』 쪽의 한 중견비평가는 그 기준을 진보성의 유무에서 찾고 있다. 진보를 부인하는 입장과 진보를 당연시하는 입장의 두 축으로 분류하고서 진보를 당연시하는 입장을 부정한다. ‘진보’개념이 다윈의 진화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한국인의 무의식을 억누르며, 세계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으로 단선적 발전을 상정하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학적 체제의 변모는 진보에의 구상과 그 구체화를 통해서 더 풍요롭고 열린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결론짓고 있다.
요컨대 이 두 계열의 글쓰기의 차이는 현실주의·민중주의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향과 자유주의·지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방향으로 나뉘고 있지만 양자는 모두 진보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기존의 문단과 구별되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의 진보성은 각각 현실에 대한 민중적 실천과 방법적 접근으로 나타났다. 현실개혁의 의지를 문학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의 끊임없는 자유로움으로 경직화된 현실과 맞서고자 한 『문학과 지성』은 유신체제라는 폭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충실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지켜 나갔다. 민족·민중문학을 내세운 전자는 문학은 분단모순과 계급모순의 해결을 위한 부단한 실천이라는 태도를, 정신의 리버럴리즘을 내세운 후자는 문학은 그 속성에서 영원히 비체제적이라는 태도를 보여 주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흐름을 형성했다. 동시에 전통적인 인간관계에 얽매여 있던 기왕의 문단풍토를 혁파해 나가면서, 문학과 사회에 대해 서로 대립적인, 그러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길을 걸음으로써 이후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두 잡지가 문학과 사회에 대해 서로 대립하면서 상호보완적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은 분리의 개념이 아니라 ‘탁월한 의미에서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이러한 상호보완-교호성에 의해 공존의 형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입장은 김윤식에 의해 계보학으로 확인된다. 예의 역사적 계기에서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우선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의 정신적 출발점을 60년대 초의 4·19와 5·16으로 소급시키고 있다. 60년대 문학을 4·19의 민주화 운동에서 평등을, 5·16의 근대화 운동에서 자유라는 개념으로 추출하고, 이는 백낙청으로 대표되는 『창작과 비평』의 비평적 흐름과 김승옥의 소설에서 출발하여 김현으로 나아간 『68문학』, 『문학과 지성』의 비평사적 맥락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비의 부재’와 ‘아비의 건재’에서 두 가지 비평적 이념축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승옥으로 대표되는 60년대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의 흐름이 부의 부재라는 사생아의 운명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아비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면, 『창작과 비평』의 흐름은 정치우위의 부사상에 근거해 지식인의 역할에 비중을 두면서 어엿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희복은 두 잡지의 창간호 및 이후의 비평적 궤적을 종합하고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은 집단적 삶의식과 미의식을 각각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에 변별적인 지향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전자는 공동체의 연대의식과 후자는 개체적인 실존의식과 관련된 그 넓이와 깊이를 각각 보여 주고자 노력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요컨대 두 잡지는 비평 이념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비평사적 견지에서 초기의 정실비평의 폐단을 시정하고 뉴크리티시즘 일변도의 강단비평에 대해 현장비평의 활성화를 통해 비평의 수준을 한껏 격상시키며 70년대 문학론을 예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2) 분화의 시작과 본격적인 분화
4·19세대가 이념적으로 분화分化현상을 보이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분화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문학의 두 가지 기능 중 한쪽의 이념이 더 선명히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분화현상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지만 적어도 60년대의 비평론적 구도에서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의 이분화 구도로 설정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순수-참여론의 구도에 비견된다. 하지만 순수-참여론이 30년대 이후 5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범세대를 포괄하고 있다면 60년대의 비평 이념의 분화현상으로 통칭되는 것은 4·19세대 자체 내의 문학적 이념에 대한 분파分派라 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4·19세대의 등장으로 활성화를 맞는 60년대 중후반의 비평적 구도가 새로운 요구에 직면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의 이념적 노선이 분명히 그려지는 시점은 70년대, 구체적으로 70년대 중후반으로 규정되고 있다. 즉 별다른 이념적 분화 없이 4·19라는 공통의 체험 속에 있다가 현실주의 혹은 민중주의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향과 자유주의 혹은 지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방향으로 크게 나뉘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광범위하게 노정되는’ 7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면서부터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4·19세대)에게 개체의 변화는 곧 세계의 변화였으며,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각과 주체적 의지였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적 모순이 광범위하게 노정되기 시작하자, 4·19에 의해 형성된 문학적 인식 틀은 자기 한계를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한계의 인식은 4·19세대의 문학적 지향의 분화—흔히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의 변별성으로 상징되는—와 역사적 전망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7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의 존재론적 왜곡에 저항하면서 문학의 자율성의 옹호를 위해 실존적 고립을 자초하는 모더니즘적 지향성과 현실의 비판적 재현이라는 리얼리즘의 원칙들과 계몽주의적 기능의 강화가 나란히 나아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4·19 이후의 문학적 문제 틀의 분화와 굴절이라는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분화 과정과 관련하여 비평론적 특성을 두고 이전과는 구별되는 인식론적인 면에서 고차원의‘진보성’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대립하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은 문학행위의 치열성이나 양자가 변증법적 통합의 과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수긍할 만하다. 『산문시대』 『68문학』의 토양을 잇는 『문학과 지성』의 경우 문학의 미학적·인식론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깊이를 진보적으로 보여준 바 있으며, 『창작과 비평』의 경우는 비제도권이 존재하기 어려운 불모의 토양에서 참여론과 현실주의 맥락을 놀랄 만큼 여과 없이 포섭하며 진보진영의 문학을 이끌고 있음은 충분히 인정되는 사실이다. 양자가 모두 나름의 입장에서 진보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4·19세대가 이념적으로 분화현상을 보이는 시기를 70년대 중후반으로 보는 의견은 지나치게 리얼리즘·분단문학·농촌문학·민중문학·민족문학 등의 다양한 문학론을 의식한 현상적·도식적인 논리로 보인다. 물론 이념적 분화가 ‘뚜렷한’ 모습을 갖춘 것은 70년대 중후반이라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필자는 이에 문학 자체(비평론 내부) 내의 변화와 동인 조직의 흐름 등을 고려해 기존의 분화론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화현상을 좀 더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우선 『창작과 비평』, 『68문학』-『문학과 지성』의 분화는 이념적 분화만이 아닌 문학사적 실체로서의 동인 활동(그것이 뚜렷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더도)도 고려해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60년대 중후기에서 70년대에 이르는 비평 이념의 분화는 1차 분화-동인적 분화와 2차 분화-이념적 분화의 두 차례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논리를 분명히 세워 나가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66년 『창작과 비평』의 창간부터 70년 『문학과 지성』의 창간까지를 분화의 예비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창작과 비평』과 『68문학』 등의 동인을 중심으로 문학적 입장 및 비평적 이념과는 관계없이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박태순·염무웅이 『68문학』에 편집진으로 참여하고 있고 『68문학』의 편집진이 『창작과 비평』의 단골 필진으로 등장하는 등 자기 나름의 비평적 입지를 다지고 문학적 기반 마련에 주력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 시기의 주요 비평론으로는 순수-참여론과 함께 이른바 ‘60년대 비평가군’의 세대론에 기반한 다양한 비평론이 마치 비평의 실험장을 방불케 하듯 무성하게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창작과 비평』과 『68문학』은 대립적 성격의 동인이 아닌 상호교류가 왕성한 무이념성의 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즉 이질성보다는 오히려 동질성이 많은 기간에 속한다. 다만 『창작과 비평』의 창간이 사회·역사적인 맥락을 가지고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 분화의 예비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내내 이념적으로 분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던 『창작과 비평』 『68문학』의 문학적 태도는 4·19세대 작가·비평가의 성과가 가늠되기 시작한 6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이념적 간극이 생긴다. 특히 창작 분야에 비해 비평론의 흐름이 통합적 이해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본격적 분화는 ‘이념적 분화’를 의미한다. 이는 70년 『문학과 지성』의 창간을 기점으로 보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문학과 지성』이 출범한 70년대 초기로 보자는 것이다. 『창작과 비평』과 양립체제를 이루게 된다는 점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자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70년 8월 『문학과 지성』이 창간되고부터 『창작과 비평』은 『창작과 비평』적인 특색의 논의를, 『문학과 지성』은 『문학과 지성』적인 특색의 논의를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편집자적 시각이 가미되는 등 잡지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으며 필진 또한 동인이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이들 두 잡지의 동인은 몇몇 좌담에 참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속한 잡지에 번갈아 가며 글을 싣고 있다. 주요 지면이라 할 수 있는 『현대문학』, 『월간문학』에서도 이들의 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문학과 지성』 쪽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본격적 분화는 예비적 단계를 포함한 ‘이념적 분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본격적 분화는 예비 단계인 자연발생적 분화에 대응하는 ‘인위적 분화’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예비적 단계가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류에 대한 역사적 전망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 본격적 분화는 이에 대한 대응전략 차원에서 『문학과 지성』을 만들면서 비롯된다. 예의 ‘현실의 정직한 문학적 인식·표출’에 대해 ‘현실변혁의 실천적 의지’가 선명히 대립적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후 두 잡지는 비평의 활성화에 효율적으로 힘을 보태기도 하고 자기 영역을 고수하려는 배타적인 면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학과 지성』 쪽은 4·19세대가 60년대에 도달했던 문학의식에 대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유신 시대-산업사회라는 새로운 단계의 현실에 나름대로 대응하여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구축해 나간다. 이는 4·19의 문학적 의미를 60년대 자체 내에서 추출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창작과 비평』 쪽은 4·19세대의 실체를 부정하는 방향에서 새로운 단계인 70년대의 전망과 관련해 현실에 대응한 민중적 실천을 통해 문학의식을 확산·심화시켜 나간다.
2. 1970년대 시민문학론의 발의와 후기 비평의 과제
1) ‘소시민’, ‘시민’의 의미와 시민문학론의 발의
『창작과 비평』과 『68문학』(『문학과 지성』)의 대립의식 및 이념의 본격적 분화는 69년 김주연의 「새 時代 文學의 成立 — 認識의 出發로서 60년대」에서 발단이 되었다. 김주연의 ‘소시민’의 발견과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은 기본적으로 60년대 전반의 문학을 반성적 차원에서 점검하고 역사적 당위로서의 시대적 소명에 걸맞은 비평론의 수립을 기획한 것이었다.
‘소시민-시민’ 논쟁은 김주연이 ‘소시민의 문학사적 의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위의 글에서 이전 세대와 60년대의 차이가 ‘인식의 싹틈’에 있다며, 50년대의 전후문학파 작가들이 “문학이 언어로 된 하나의 질서라는 사실보다 그들 생애의 충격을 담는 그릇”으로 보아 결국 실패한 데 비해 60년대 작가들은‘개인화와 인간 소외’(소설), ‘개인의식’(시)을 드러냄으로써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서 발단한다.
“새 시대 문학의식의 기본 심리가 되고 있는 ‘소시민’ 의식은 여기서 현대문학이 지향하는 개성적 인간의 현현顯現이라는 이념과 순조롭게 연결된다. 물론 이 경우에 있어 ‘소시민 의식’이라는 어휘는 사회구조와의 필수적인 연계관계 아래서 고찰된 사회학적 결론과는 무관하다. 사실상 우리 사회가 ‘소시민’을 허락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사회학 자체에서도 정설로 보고 있지 않을 만큼 사회의 유동도流動度가 심하며 또 그에 대한 결론은 이 경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작가의 의식층 밑을 흐르고 있는 것이 바로 ‘소시민’ 의식이라는 사실을 짐짓 발견해내려는 태도 자체다. 그것은 사실과는 다른 논리의 소박한 함수관계를 벗어난 문학현실로서의 문제인 것이다. 사실상 60년대의 작가와 시인들처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세대는 없었다.”
위의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김주연은 60년대 문학의 새로운 감수성과 세대감각 그리고 개인의식과 관련하여 ‘소시민 의식’이란 개념을 도출해 60년대 문학의 지표로 설정한다. 그의 ‘소시민 의식’은 이미 『68문학』 계열의 김현·김치수·김병익 등이 60년대적 특징으로 파악한 ‘개인의식’의 다른 표현으로, 이를 비평론적으로 논리화·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회문화적 개념이다. 다시 말해 이 개념은 단순히 이전 세대에 대한 차별적 개념을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논리적으로 심화시키겠다는 전략상의 관점에 서 있다. 이런 점에서 ‘개인 의식’이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한편 그 시각을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이 글에서 ‘소시민 의식’의 구체적인 매개항으로 설정된 ‘트리비얼리즘’은 말 그대로 현실의 속물성-비속성에 집착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을 전제로 김주연은 속물성을 전적으로 수락하는 의미에서 건전한 ‘소시민 의식’을 구현하고자 한다. 그는 ‘소시민 의식’과 동일한 의미로 ‘트리비얼리즘’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사소한 것에서 사소하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개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개인의식과 관련하여 인간의 ‘선’과 대극적인 위치에 있는 ‘본능과 감각’ 중에서 ‘선’에 집착한 괴테와 달리 노발리스를 비롯한 서구 낭만파의 주장에 접근한다. 즉 주체의 주관성을 절대시한 관념론의 입장에 동감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전제하에 김주연은 60년대적 새로움의 실체를 ‘개성’이라 정의하며 결론 맺는다.
“새로운 문학이란 바로 사물에 대한 인식의 눈뜸이다. 일체의 공상과 선험, 편견,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사실의 종합으로서만 압박을 주는 역사, 수사학으로서의 신, 정신의 허세가 가득 담긴 허세나 가장 제거되어야 할 동양적 체험과 감상에서 감연히 벗어나 하나의 나뭇잎, 겨울방의 한기, 만남의 기쁨에 모두 제 무게를 재어 주고 똑같은 논리의 순환으로 전쟁과 삶, 질병과 죽음, 모순과 허무의 추상감각에도 정당한 제 무게를 달아 주어야 한다. 사물에 대한 보편인식이란 바로 개성의 여부를 말한다.”
김주연이 50년대 문학에 대해 실패론으로 규정하자, 백낙청은 「市民文學論」을 통해 반론을 제출한다. 그 반론은 서기원의 「戰後文學의 擁護」를 두둔하고, 김주연이 주장한 ‘새 세대 문학의 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50년대 문학의 연장선에서 60년대 문학이 성립할 수 있었다는 계승론을 역설하는 데까지 치닫고 있다.
백낙청은 김주연의 ‘소시민’개념을 차용하고 있지만 새 세대 문학론에서 보여주는 ‘소시민’과는 차이가 있다. 즉 김주연은 ‘소시민’의식을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계기로 전면화한다고 인식한 데 반해, 백낙청은 이를‘시민의식’의 결여 형태로 파악한다. 김주연이 과정론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백낙청은 결과론으로 이해한 것이다. 양자는 똑같이 시민적 전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추구하는 방법론에서 차이점을 드러내는데, 이는 두 비평가의 비평론적 입지와 관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인식의 간극은 『창작과 비평』과 『68문학』에도 그대로 내재돼 비평담론의 차별성으로 나타난다.
백낙청은 ‘소시민’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시민’의 개념에 주목한다. 서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의‘소시민’개념을 살펴보자.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기의 시민계급을 통해 본 시민다운 시민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이상으로 삼고자 하는 ‘시민’의 완전한 정의가 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아니, 완전한 정의란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소시민’과 대비시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이상으로 내걸려는 ‘시민’이란, 프랑스 혁명기 시민계급의 시민정신을 하나의 본보기로 삼으면서도 혁명 후 대다수 시민계급의 ‘소시민’화에 나타난 역사의 필연성은 필연성대로 존중해 주고, 그리하여 그러한 필연성을 기반으로 하여—또는 그와 다른 역사적 배경인 경우 그와 다른 필연성을 기반으로 하여—우리가 쟁취하고 창조하여야 할 미지未知, 미완未完의 인간상인 것이다.”
그는‘시민’과 ‘소시민’의 두 개념을 대비적으로 인식해 미래지향적인 시민관을 피력한다. 여기서 ‘미지, 미완의 인간상’이란 다름 아닌 진정한 의미의 시민이다. 이는 시민을 역사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정의한 것으로 우리의 근대사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개념이다. 백낙청은 부득이 60~70년대의 우리의 사회·환경에 대입될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서구의 개념을 빌려 올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 개념이 분명하지 못하고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하지만 건전한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그의 「시민문학론」은 우리 근대사의 과제로서 시민혁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이어서 이에 대응하는 과제로 반제와 반봉건을 기치로 하는 시민(부르주아) 민주혁명을 설정한다. 여기에 덧붙여 시민문학론의 논거가 되는 시민의 개념을 설정한 후, 김주연의 소시민(트리비얼리즘)을 염두에 두고 ‘소시민’의 계층·계급적 성격과 의미를 밝힌다.
“혁명 후의 시민계급이 일부는 귀족계급의 잔존자와 결합하여 이른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일종의 상층 부르주아지를 형성했고 나머지는 역사의 실질적 결정권에서 점차 소외되어 왔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특수한 소외의 산물인 새로운 유형의 시민들, 엄연히 시민계급의 일원이면서도 시민의 제반 지배적 결정에는 참여 못하고 그런데도 자신이 지배계급의 구성원이요 자립자족적인 시민이라는 환상을 끝내 고집하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자가당착적 처지와 자기 이해의 결핍 때문에 극도로 무책임한 개인주의와 극도로 감정적인 집단주의 사이를 무정견하게 방황하면서 해소할 길 없는 원한과 허무감과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사회의 수많은 시민들—이들을 우리는 중소기업가니 상인이니 또는 현대적 신중간계급이니 하는 식으로 계층 구별을 함이 없이 통틀어 ‘소시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김주연이 ‘소시민’의식을 사회학적 의미에서 엄밀히 규정하지 않고 논의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백낙청 또한 ‘소시민’개념을 엄밀한 사회학적 계층분류 방법에 의거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생활태도 및 정치의식에 초점을 둔 광범위한 개념으로 ‘프티부르주아’‘소상인 계층’ 정도로 ‘소시민’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백낙청은 이어 ‘소시민’ 의식을 미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순응주의나 새로운 세대의 문학적 표어가 되는 것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표시하고 3·1운동과 4·19정신을 충실히 계승한 작가로 한용운·김수영을 시민문학의 전통에서 정당하게 가치평가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이미 ‘소시민’에 대한 반대명제로 내놓은 ‘시민의식’을 ‘시민적 전통’인 한용운·김수영의 작품 천착을 통해 ‘자유’, ‘참여’의 의미로 규정한다. 특히 김수영의 시 「사랑의 변주곡」 중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는 부분을 인용하며 “시민문학론이 우주 전체를 움직이고 이끄는 힘으로서의 ‘사랑’과 같은 의미를 갖는 정확한 동의어로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며 글을 맺는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규정은 구체성을 띠고 있기보다는 비약된 감이 있고, 「시민문학론」을 여전히 참여론에 묶어 두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편 소시민의 의미를 지나치게 대타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의 본질을 구명하는 데 난점이 되고 있다.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에서 ‘소시민문학론’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당한 김주연은 속편격인 「繼承의 文學的 認識」을 통해 「새 世代 文學의 成立」에서 밝혔던 자신의 논의를 전면화·체계화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그가 규정하는 시민의식의 속성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시민의식이란 노력해서 획득되어지는 것이지, 관념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② 대중 확산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감각이라는 공동의 장에서 출발한다, ③ 감각을 인식의 발판으로 하는 문학에서 보편성의 획득은 반드시 이념적으로 바람직한 면에 의해서만 가능하지는 않다, ④ 시민의식이 내보이고 있는 긍정적인 이념, 윤리와 책임이라는 명제는 강론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념의 뒷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과 감각의 완성과 그 극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그의 주장의 골자는 시민의식의 형성은 필연적으로 ‘소시민 의식’이라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감성의 발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가 밝힌 개인의식이 사회 이념이나 시대적 이념에 앞서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김주연의 주관성 강조는 모든 사물을 자신의 입장에서 새롭게 조망해 보려는 의지의 결과이지만, 자신이 주장한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감성과 이성의 균형감각을 취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모순을 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그가 ‘소시민 의식’을 시민 의식을 각성시키는 하나의 계기로 보지 않고 방법론의 차원으로 확대시킨 데서 빚어진 오류라 파악된다.
그는 이후 「歷史批判論과 市民文學論」을 통해서도 백낙청의 의견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때부터 소시민-시민 논의는 ‘시민성’의 개념 규정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우선 ‘시민문학론’을 “미자각층에게 계몽성의 형태로, 때로는 자본가의 이론으로, 때로는 피지배층의 이론으로, 상호혼접하면서 오늘날의 개인주의·합리주의·민주주의로 발전해” 온 부르주아 중산층의 소산으로 보는 이론으로 규정하고 백낙청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상위점相違點을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백낙청은 「한국문학과 시민의식」을 통한 재반론에서 소시민의식을 제국주의 사상의 다른 일면이라 규정하고, “몇 해 전처럼 공공연히 옹호하고 예찬하는 말을 요즘은 들어 보기 어렵다.”며 시대에서 이미 동떨어진 논의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반제·반봉건 의지에 입각한 시민적 참여문학의 당위성을 천명하며 그 실천적 입장인 민중문학·농민문학으로의 가능성을 역설하고 있다.
‘시민’과 ‘소시민’의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김주연과 백낙청의 두 차례의 공방은 60년대 비평론의 풍토에서 70년대로 성큼 뛰어넘으며 민족문학론의 이론을 모색하는 단계의 탁월한 수준의 지도비평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는 논쟁의 형태를 취한 비평론 중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특히 김주연의 소시민문학론에 공감을 표시한 『문학과 지성』 계열의 비평가들도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에 대해 적대적 입장을 드러내기보다는 양자의 의견을 경청해 논리를 보완함으로써 「시민문학론」을 성숙한 단계로 고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논쟁은 60년대 비평론의 질적 성숙도를 대변한다 해도 무방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논쟁이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의 긍정적 의미에서의 이념적 분화(혹은 민족문학론의 모색과정)를 재촉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시민문학론’의 성과는 혼란의 와중에 있는 참여론을 구출하고, 정작 시민문학론이 소시민-시민의 합의에 접근하는 72년에 이르면 리얼리즘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로 발전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2) 민족문학론에 관한 지평 모색
60년대 후반의 비평의 구도는 크게 세대론과 참여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세대론은 비평론의 틀을 뒤흔드는 의식의 편차를 드러내는 방식이었고 참여론은 같은 세대 간의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세대론이 이전 세대와의 수직적인 성격이라면, 참여론은 동 세대 간의 수평적인 논쟁으로 기록된다.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한국문학은 두 개의 커다란 충돌을 보게 된다. 68년 봄을 정점으로 했던 참여문학론은 69년 봄부터 활발해진 세대의식으로 요약될 이 충돌은 기실, 4·19가 일어나던 60년대 초부터 그 싹을 배태하고 있었다. 종적인 연대감을 파괴하는 듯한 세대의식과 횡적 균열을 심화시키는 듯한 참여문학의 두 논쟁은 4·19세대가 기성층으로 진입하여 자기 자리를 확보한 이제 와서는 불가피하게 제기되어야 했던 것이며 또 거기서 우리 문학은 새로운 교훈과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에 이러한 충돌은 오히려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접근을 얻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지나치게 격렬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야비할 정도의 발언이 교차된 이 논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와 여기서 얻게 될 판단은 60년대의 우리 문학을 그리고 신문학 60년 사상史上에서 그것이 차지할 위치를 제대로 발견하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점검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대론의 허점은 지나치게 동시대 비평가의 질적 우위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 대상으로서 혹은 또 다른 하나의 주체인 이전 세대의 비평적 활동이나 성과는 아예 논의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전의 어떤 논쟁보다도 질적 수준이 심화된 데 비해 포괄적 논쟁이라 하기에는 미흡한 감이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65년을 전후한 중반의 논의로 그치지 않고 중후기 내내 참여론 등과 맞물리면서 60년대 말에는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으로 정초하게 된다. 이에 비해 참여론은 60년대에 활동한 대다수 비평가들의 비평론적 입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돼 비록 질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 “때로는 지나치게 격렬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야비할 정도의 발언이 교차된 논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지만 70년대로 이어지면서 그 자리가 리얼리즘론으로 심화, 발전해 민족문학의 원리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세대론이 좀 더 구체적으로 논리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9~70년의 김주연과 백낙청의 공방으로 나타난 소시민-시민문학론이었고, 참여론이 세 차례의 모색 과정을 거치며 심화·확장된 것은 70년 4월 『사상계』에서 주최한 ‘4·19와 한국문학’ 좌담회에서 발단한 ‘상상력과 리얼리즘 논쟁’이었다.
전자는 ‘시민문학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민족문학으로의 지평을 활짝 열었고 후자는 민족문학의 방법론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살펴봤듯이 이 두 논쟁은 소시민-시민의 의미를 과학적으로 추출하여 민족문학의 주체를 확고히 하는 한편, 리얼리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해 민족문학론 수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70년 초의 민족문학론은 이러한 배경에서 산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춰 60~70년대 민족문학론의 연원은 4·19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4·19는 정치적 자유를 문학적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순수-참여논쟁으로 제기했는바, 이의 문학적 변용이 민족문학론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두 논쟁에서 보여 주듯이 7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4·19에 대한 문학적 관심은 이러한 사정을 잘 대변한다. 특히 참여론이 민족문학론의 하위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이유는 당대의 억압적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으로 표상되는 ‘개인의식’을 배태해 창조적인 문학적 환경을 이룩하는 데 문학 활동이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가를 방법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관심은 『월간문학』에서 마련한 ‘민족문학론’특집으로 집약된다. 이 특집에서 논점이 되고 있는 부분만을 간추려 본다.
김현은 「민족문학, 그 문자와 언어」에서 민족문학이라는 용어 대신 한국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즉 그는 좌우파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국수주의적 태도에 입각한 용어를 시정하고, 20년대의 왜곡된 ‘국민문학’과는 전혀 다른 현재의 입장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형기는 「民族文學이냐, 좋은 文學이냐」에서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문학작품에는 당연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이를 민족문학이라 규정한다. 아울러 “세계문학으로의 우리 민족문학, 나 자신의 말투로 고친다면 구태여 민족문학이니 뭐니 하지 않더라도 절로 우리 민족들을 대표하는 민족문학이 되고 동시에 인류공동의 재산으로 남을 수 있는 문학을 우리는 아직 갖지 못하고 있다.”면서 “좋은 작품이 곧 우리의 민족문학”이라는 소박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철범은 대다수의 전후문학파 비평가가 민족문학의 당위성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데 비해 긍정적인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그는 참여문학론의 기조하에서 반공·반부르주아를 외치는 민족문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현대문학에서 민족문학이 마멸된 원인을 ‘반민족 어용작가’에서 찾고 있는 그는 참여문학·반공문학·민족문학이 같은 성격의 것이라 파악한다.
이렇듯이 위의 논자들이 보여주는 60년대 말 70년대 초기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관심은 주로 개념설정에 그치는 단계였으나 그마저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후 민족문학론의 방향은 이보다는 시대적 상황이나 민족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으나 여전히 개념론의 주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민족문학의 개념과 성격이 그 당위적 성격으로 인하여 너무 쉽사리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가치개념을 앞세워 문학적 가치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민족문학론은 대체로 그 성격이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민족문학이란 용어에서 문학을 중요시하는 입장과 민족을 중요시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은 6·25와 4·19를 거치면서 뚜렷한 이원성을 보이게 된다. 전자는 민족이나 역사적 현실을 위주로 하기보다는 문학의 본질적 면을 중요시하는 민족적 순수주의로 나타나고, 후자는 리얼리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역사적인 측면에서 문학을 바라보는 입장이다. 특히 후자는 이런 점에서 민족문학의 개념 및 이의 내포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민족문학이란 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들이 생각하는 민족문학의 방향은 반제 반봉건, 주체의식의 발견, 민주화와 분단극복 의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시기적으로 감안하면 70년대 이전에는 주로 반제 반봉건, 주체의식에 비중을 두고 있다면 70년대 이후에는 민주화와 분단극복 의지를 발현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그런데 민족문학론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보다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사항은 이를 대하는 시각과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문제로 귀착된다. 민족문학의 방법론을 수립하는 데 시간성의 의미는 민족문학이 단순히 어제나 오늘, 미래 중 어느 한 부분에 집착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 미래적 전망이라는 거시적 관점과 문학사의 당대 및 현재라는 미시적 관점이 조화될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날 수 있으며 궁극적 의미가 구현되리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공간성의 의미도 시간성 못지않게 중요한 국면이다. 특히 60년대 초기 인쇄매체의 확산과 후기 이후 영상문화의 범람은 가공할 만하다. 그 영향력은 70년대 산업화의 급류를 타고 모든 단위의 지역을 하나의 띠로 묶고 있다. 요컨대 시간성이 내부적인 문제의 극복에 놓여 있다면 공간성은 주체화한 우리 문학의 외부로의 교섭 및 외국문학의 주체적 수용과 직결된다.
다음의 두 평문은 민족문학론의 방법론을 수립하는 데 이 두 가지 요소를 극복해야 할 당위적 명제로 설정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민족적 자기 동질성을 근간으로 하여, 거기에 민족적 특질과 개성을 지닌 문학적 요소들을 함유한 문학이라는 거시적 관점과 함께 이 같은 문학이 특히 역사의 각 단계에 있어서 절실하게 대두되는 현실문제에 진지한 작가정신과 정서적 대응물로 형상화시킨 문학행위의 총체라는 미시적 관점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민족문학이란 한 민족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평민뿐만 아니라 귀족까지, 피지배계급만이 아니라 지배계급까지를 포함한 총체적인 민족의 문학적 질서이므로 끊임없이 이질문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 민족문학을 이상화하고 인류적 보편성의 문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1970년대 들어 『창작과 비평』은 민중과 분단된 민족 현실에 주목,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문학론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1969년 발표된 「시민문학론」은 리얼리즘과 유기적 공동체주의에 입각하여 자유주의 문학론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1960년대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4·19세대 비평 패러다임의 근저에는, 세계사적(서구적) 보편성을 한국사에서 찾고자 했던 민족주의적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시민문학론」은 주로 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예비하는 글이라는 의미에서 논의되어 왔지만 「시민문학론」에 내재된 정치 이념은 민족주의라고 하기에는 소극적인 측면이 짙다. 『창작과 비평』이 본격적으로 민족문학을 제출하게 되는 것은 1970년대 들어서부터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논제가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강만길의 「분단사학론」, 그리고 박현채로 대표되는 「민족경제론」 등과의 교섭이다. 즉 『창작과 비평』은 내재적 발전론의 수용을 통해 민중이 근간이 되는 평민문학의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으며 「분단사학론」을 통해 분단된 민족 현실을 문학적 대결의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는 한영인 등 몇몇 연구자의 접근과 지적은 설득력이 강하다. 여기에 더해 비판적 정치경제학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비판적 정치경제학과의 교섭을 통해 「민족문학론」은 문학과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를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경제적 관계로 인식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경제적 생산구조의 변모가 결과한 모순은 문학이 고민하고 씨름해야 하는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라는 맥락 역시 타당해 보인다.
1970년대의 「농촌문학론」은 이러한 방법론의 귀결이었다. 즉 1970년대 민족문학론의 핵심적인 특징은 민중 개념에 서 있다는 판단이다. 백낙청의 「문학 대중화론」은 민족문학이야말로 대다수 민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학이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창작과 비평』이 톨스토이의 ‘만인을 결합시키는 문학’을 모토로 삼고 ‘리얼리즘’을 그 방법론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문학이 이러한 역설적인 권능을 온전히 결부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한편 『문학과 지성』에 따르면 문학은 디스유토피아적인 어떤 것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고통을 역설적이게도 행복스럽게” 전달하는 것이며, 끝내 부정적인, 그러나 동시에 행복감을 주는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다. 곽상순(「문학과 지성이 1970년대 한국소설에 끼친 연구」)에 의하면 『문학과 지성』은 특히 문학을 다룰 때, “예외적 개인”이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이러한 예외적 개인들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적 계명들을 위반하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해서 진정한 윤리적 차원을 발견하는 인물들이라고 파악한다.
즉 『창작과 비평』이 예찬하고 권장하는 개인이 일종의 도덕적 모범의 형상을 두르고 있다면, 『문학과 지성』이 주목하는 개인은 타인이 따를 수도 없고 따라서도 안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특수한 선택을 통해 삶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예외적 인물로 기능한다. 이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1970년대로 이월하면서 차별성을 갖게 되는 문학을 바라보는 극명한 인식의 차이라 할 수 있다.
한강희 -----------------------------------------
1961년생, 성균관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 전남도립대학교 교육복지학부 교수,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저서 『소통과 성찰의 상상력』, 『그늘과 상처의 미학』, 『스토리, 스토리디자인, 스토리텔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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