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먼저’보다 ‘더’를 훨씬 좋아한다. 더 크고 더 많고 더 높고 더 좋은 것만 바란다. ‘먼저’인 경우도 ‘더’가 있어야 움직인다. 어쩌면 ‘더’란 욕심의 표현일 때가 많은 것 같다 .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더’가 많이 동원된다. 남에게 주는 것에 ‘더’는 약하다. 그랬다. 맞다. 아이는 꼭 “하부지 먼저 먹어.” 했다. 저보다 먼저 할아버지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 부지 더 먹어’라고는 하지 않았다. <먼저 좋아> 중
삶의 맛내기란 서로의 조화 속에서 나의 특별함을 나타내 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조금 낫다고 내 세상인 듯 남을 무시하고 거드름을 피운 것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제각기 소용로의 소금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많으면 탈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절적으로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소금인 것처럼 그 소금이 들어가야 기본의 맛이 확보되 는 것처럼 내 삶 또한 기본의 간 맞추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소금을 넣어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소금이 되 어 주는 것이 더 필요하리라. <내 맛내기> 중
그렇고 보면 세상을 더 오래 살았다고 해서 더 현명하고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조금 돌아가는 것 같고 조 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면 기쁘게 나아갈 때 오히려 그런 마음이 세상을 제로 사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길눈> 중
그냥이란 말 속엔 ‘충’과는 다른 뜻으로 여러 가지 의미 들이 담겨 있다. 좋다 나쁘다의 중간도 그냥이다. 많은가 적 은가의 중간도 그냥이면 된다. 잘 지내느냐고 물어도 ‘그냥’이 라 답하면 되고, 건강이 좋아졌냐고 물어도 ‘그냥’이라 하면 된다. 그냥이란 말 속엔 좋아졌다는 뜻과 좋아지진 않았지만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뜻이 상존한다. 정확히 답하고 싶 지 않다는 뜻도 포함된다. 그런데도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답이 된다. 우리 삶에도 그냥이면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 은 ‘그냥’ 하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차거나 덥거나, 좋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 기면 기고 아니 면 아니라고 하라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찌 2분법으로 모 든 것을 나눌 수 있으랴. <그냥> 중
사락사락 사락사락, 새삼스레 싸락눈이 내리던 어린 날과 할머니의 치맛자락 움직이는 소리가 내 마음을 흔드는지 모 르겠다. 이 나이 내 마음 속에 그때 그 싸락눈 같은 그리움이 쌓이는 소리일까. 때늦게 할머니가 그리워진 것일까. <사락사락> 중
내게 ‘착한’은 그냥 ‘착한’이다. 심은 로 거두는 진리 같 은 거다. 당장은 아녀도 시간이 가면 좋은 일로 밝혀지는 그 런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착한’은 억지로 좋게 보이려 하는 것만 같아 그냥 가슴이 아프다. ‘착한’만 갖다 붙이면 다 좋 게 보아주고 믿어주고 생각해 줄줄 아나 보다. 착한 일, 착한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이 좋아진다. 그런데 왠지 요즘 유행하 는 ‘착한’은 착해 보이지가 않는다. <착한에 대한 유감> 중
아무리 장사라도 세상이 어찌 이리도 믿음이 없어져버렸는가 아쉽기는 했지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 석이 개운치 못 한 것은 아내의 말 한 마디 때문이다. “나도 몇 번 그렇게 해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남은 것은 차가 와서 실어 가더라구요.” 그래도 난 그 할머니가 그 늦은 시간에 그 배들을 집으로 가져가게는 할 수 없었다. 피하듯 자리를 떠나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잡히지만 그래도 할머 니께 좋은 일 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완전히 가 시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의 아쉬움은 또 뭘까.
<그래도> 중
어쩌면 K가 “나중에 하 지 뭐.” 했던 것은 ‘너와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겠구 나.’ 하는 체념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단풍이 바람결에 날리고 있다. 거기서 눈을 뗄 수 가 없다. 나중에 보겠다고 눈을 돌리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 어져 버릴 수 있다는 불안함이 가슴을 누른다. 그러고 보면 ‘나중에’란 말만큼 무서운 말도 없을 것 같다. K의 ‘나중에’란 말이 슬픔의 덩이로 목을 매이게 한다. <나중에, 다음에> 중
남은 간이역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현인들에겐 간이 역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 같다. 그러나 눈물과 회한, 고 통과 슬픔, 절망이 있기에 삶도 그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 데 사람들은 그저 기쁨과 행복만을 바란다. 우리 삶에서 간이역은 향수처럼 쉼표로 품고 살아야할 고 향이다. 그를 미래란 이름으로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래서 가슴속에 간이역 하나씩을 품고 사는 사람에겐 꿈도 희망도 메마르지 않는다. <간이역> 중
벌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 다. 거기 선생님 한 분이 내 앞에 선다. 가정 사정상 중학교 에 가는 걸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시험이라도 보라던 선생님, 얼러도 보며 설득을 해 보았지만 안 되자 너무 쉽게 포기한 다고 매를 들던 선생님, 나는 지금도 그 선생님의 매가 그립 다. 내 다리에 피멍이 들도록 내리쳐지던 회초리, 그때 난 울 지도 않았던 것 같다 . <그래도 그 때가 그리운 것은> 중
돌아오는 길, 그러나 사막은 갈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펼쳐진 선 들도 날카로움이 아니었다. 주관적인 생각으로만 사막을 바라 보던 나의 눈에 비로소 삶의 동반자로 삶의 터전으로 그리고 더 많은 날의 삶을 살아야 할 미개척지로 그들이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나는 오늘 사막에서 핀 두 종류의 꽃을 본다. 하나는 삶의 역경을 이겨낸 결과의 삶터라는 꽃이요, 그 삶터 위에 피워낸 문학이란 꽃이다. 하나도 이루어내기 어려운 현실을 넘어 두 가지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저들의 용기와 지혜와 열정과 갈증이 사막에서 피운 꽃의 향기로 가슴 뭉클하게 몰려온다. <사막에서 피운 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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