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들/수필의 향기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늘샘 2004. 8. 5. 09:44
향기의 샘]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
Update : 2004-06-15
아침밥을 먹으면서 눈으로는 신문을 제목만 훑고, 귀로는 TV 아침 뉴스를 듣습니다. 그 시간이라야 고작 10분도 안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접하는 것은 국내외를 망라한 엄청난 사건·사고 소식들입니다. 어제 저녁 뉴스 후에 일어난 일만도 얼마나 많던가요. 새삼 평안이란 말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출근길에 나서서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조금 전의 뉴스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상되며 한 줄로 스쳐 지나갑니다.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생각되는 것은 ‘참 요지경 속 같은 세상, 일도 많고 사건도 많구나.’였습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어제의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게는 어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얼마나 일어났었는가. ‘밤새 안녕’이란 말도 있듯이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해야 안도의 숨이 나옵니다.

언제부턴가 ‘아,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구나.’ 하는 말은 ‘오늘도 어려움 없이 하루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라는 기도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는 아는 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순리보다도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고 있기에 그런 소문들이 오히려 정상인 것처럼 생각되는 때에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예측 불가의 삶 속에서 탈 없이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실로 기적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오늘 한 날도 무사히 잘 보내게 하여 주소서.’ 보다는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고 말 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로 우리의 기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라도 하지 않고는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시대, ‘어제는 아무 일 없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는 이 말이 매일 기다려지는 건 나만일까요?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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