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들/수필의 향기

눈부시게 푸른 날에

늘샘 2004. 6. 3. 23:19

[향기의 샘]

눈부시게 푸른 날에


Update : 2004-06-01

수목원, 5월을 마감하고 6월을 여는 풀과 나무들이 햇빛바라기를 즐기며 한껏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푸른 잎에 쏟아져 내린 햇빛에 눈이 부셨습니다. 이곳 햇빛은 유난히 청량하여 나만 이런 행복을 누리는 것같아 미안한 마음조차 들었습니다. 내리는 햇빛 한 움큼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프단 생각이 드는 것도 우리가 사는 오늘이 너무 황량하고 각박하다는 생각에서일 것입니다.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 될 것 같은데도 그걸 내 몫이 아닌 네 몫으로 하여 서로 마음의 문을 닫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이날, 지구 반대편에 살더라도 아낌과 베풂이 서로 통한다면 세계가 하나, 당신과 내가 하나임을 실감할 수 있을 텐데 요즘의 ‘세계는 하나’란 그저 얼마나 빨리 가고 오는가일 뿐, 같은 생각 같은 마음 따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엔 가까이 있어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곁에 있는 것 같이만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아이가 외국 여행 중인데 자기 홈페이지에 그날 그날의 여정을 상세히 올리고 있어서인지 아이가 정말 먼 나라를 여행 중인가 의아해질 때가 있습니다. 보름이 지났건만 여전히 곁에 있는 것 같고, 금방이라도 ‘아빠!’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마음이 함께하면 거리는 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맘껏 숨을 들이켜 봅니다. 초록 향기가 사르르 코와 입속으로 빨려들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가슴속까지 이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덤으로 얻은 한아름의 행복을 가득 안습니다. 눈부시게 푸르른 이런 날은 다른 아무 생각 말고 그저 심호흡만 크게 할 일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햇빛과 푸르름, 이 찬란한 은혜를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당신에게 행복병으로 전염시키고 싶습니다.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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