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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도 아닌 것이

늘샘 2008. 12. 15. 13:59

섬도 아닌 것이


최원현/수필문학가. 칼럼니스트

  http://essaykorea.net


   

  내가 그를 만난 건 오후 햇살이 찰랑찰랑 바다에서 넘치고 있을 때였다. 맑은 하늘에선 햇살이 바로 쏟아져 내려와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게 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어서 오라며 바람을 마중 내보내 땀을 식혀 주었다. 바닷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바다 위로 펼쳐진 파아란 하늘, 거기에 질세라 아스라이 수평선을 그리는 바다다. 어디서든 마주 서기만 하면 그곳이 바다의 시작이련만 오늘 내 앞에 펼쳐진 바다는 하늘과 하나 되어 ‘지구는 둥근 것이여!’ 구성진 판소리의 한 음절로 내게 아는 체를 해왔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미항(美港)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고, 그 이름이 왠지 마음을 끌기도 하여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특히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였다는 게 향수처럼 몰려와 찾아볼 마음을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남애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나를 맞았다.

  세 그루 소나무가 요염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작은 산 위 정자에서 내려다 본 항구는 신의 작품 중에서도 명작이었다. 헌데 내려와 젊은 횟집 주인에게 고래사냥의 촬영지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런 데도 있어요?’ 하고 오히려 반문이다. 하기야 사는 게 너무나 바빠 그런 데까지 마음 쓸 겨를이 없을 수도 있고, 요즘 것도 아닌 오래 전의 영화 얘기니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지 먼 타지에서 찾아왔는데 그곳에 살면서 모른다니.

 약간은 무안해져서 하릴없이 바다에 잠겨 머리만 내밀고 있는 바위를 세며 항구 쪽으로 향하는데 항구를 싸안고 있는 방파제 끝에 서있는 산이랄 수도 없는 작은 봉우리가 눈에 띈다.

  바다로 빠지지 않으려 버티고 있는 자세로 솟아있는 봉우리는 분명 섬이었다. 헌데 다시 보니 섬이 아니다. 그런데 뭐랄까. 그의 모습이 아주 외로워 보였다. 소박맞고 쫓겨나 친정집 앞에서 작은 보따리 하나 가슴에 안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박네 딸의 모습 같았다. 다시 되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도 못 내는 안타까움, 그는 꼭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을까. 다시 바라보니 섬도 아니고 육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로 육지에도 밉보이고 바다에도 밉보일 만 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둥근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영화의 고향 고래사냥 촬영장소’, 아 이곳이었구나. 반가움에 사진부터 한 장 찍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하나의 안내판, 이곳이 양야도(陽也島)란다. 그렇게 그와 나는 만났다.

  그렇구나. 섬이었구나. 본래 섬이었는데 이렇게 방파제를 구축하다 보니 섬이 뭍으로 이어져 버린 것이구나. 바다에 접해있는 쪽은 바위 벼랑이고 그 작은 바위 봉엔 세월만큼 흙이 쌓여 열두 그루의 해송이 봉우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 올라보고 싶은데 쇠줄이 통행을 맞고 있다.

  안내판의 내용은 높이가 30여미터요, 조선시대엔 봉수대가 있어서 남쪽으로 강릉 연곡현 주문진산, 북쪽으로 양양 하광정 조진산 봉수대와 연결되어 변란시 교신을 했던 곳이란다. 그리고 원래는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38년 방파제 사업으로 지금처럼 육지와 연결된 것이라 했다. 나라의 위급함을 알렸다는 곳, 그런데 이곳으로 간첩이 침투하기도 했단다.

  바다 쪽으로 눈을 주니 파도가 몰려와 자꾸만 바위 벼랑에 부딪힌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 휩쓸리지 않고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돌아가고파 용을 쓰고 있는 것이었구나. 달려들어 그를 묶고 있는 삼면의 콘크리트 방파제를 끊어주고 싶다. 그래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 주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나보다 한 학년이 아래이던 아이가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얼굴이 아주 곱상한 아이였다. 물가엘 가도 늘 물에는 들어가질 않던 아이다. 아니 다들 옷을 벗고 뛰어들어도 절대 옷을 벗지 않던 아이였다. 우리는 그저 물을 무서워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앉아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었다.

  아이네는 제법 잘 살았다. 아이네가 어디론가 떠나 가버린 후에야 무남독녀인 그녀를 집에선 갓난아이 때부터 아예 남자로 키웠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남으로 해서 비로소 여자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곳에서도 남자 아닌 남자로 살아갈까. 

  양야도는 내게 그 때 그 아이를 생각나게 했다. 섬이고 싶은 산, 섬이었던 산, 하지만 70여년을 그는 섬이 아니게 살았다. 어쩌면 섬을 포기하고 육지의 작은 봉우리로 살아갈 생각을 굳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그가 맘에 걸린다.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죄를 지은 것처럼 주눅이 들어있던 그였다. 제가 잘못해서 소박 당한 게 아니건만 그를 받아들일 수 없던 그 시대의 소박네 풍속처럼 그는 애꿎게도 섬이면서 섬도 아니게 아픈 가슴으로 슬픔을 삭여야만 했으리라.

  양야도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나이 되도록 내 정체성도 제대로 못 찾은 나, 나는 늘 흔들리며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정작 좋은 것인지도 분간 할 수 없었다. 바쁘게는 살아왔지만 해놓은 것도 없고 그저 70여년을 그렇게 살아온 양야도와 다를 게 없다.

  이제는 누가 그럴까? 섬도 아닌 것이 섬인 척 한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섬일 수 없는 데도 꿈을 못 버린 양야도는 그래서 슬퍼 보인다. 갈 곳이 없다. 아니 갈 수가 없다. 바다로도 그렇다고 이렇게 남아있자니 또 가슴이 아리다. 그리움만 안아야 하는가. 양야도를 돌아 남애항을 나오는데 바다 갈매기 한 쌍이 나를 배웅한다.

  그래 나는 너를 섬으로 인정하마. 그런데도 동병상련(同病相憐), 초등학생 때의 그 아이의 마음인 양 뭔가 자꾸만 불안해 진다. 나이 탓만도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내 정체성을 못 찾은 미숙한 내 삶의 정신연령, ‘섬도 아닌 것이’ 누군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만 같다.


월간 <수필문학> 2007년 <연간수필집>


최원현 essaykorea.net

국제펜클럽 심의위원. 수필문우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수필문학상. 동포문학대상.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 <숨어있는 향기> <서서 흐르는 강> <기다림의 꽃> 외 nulsae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