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가시나무를 뽑아내며
최원현
사람이건 식물이건 사랑을 받는다는 건 가장 행복한 일이고 축복일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면 집안에 있던 화초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다가가 쓰다듬어 주고 물을 뿌려주고 이파리를 매만져주면서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구나. 심심 했겠구나 하고 말을 건네주면 참으로 신기하게도 금방 생기를 찾는다.
집에서 가꾸는 식물만이 아니라 산과 들에서 나고 자라는 풀꽃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비록 사람이 눈여겨 봐 주지 않는다 뿐이지 오히려 하늘과 땅에 날고 기는 새며 짐승들 그리고 햇볕과 바람과 비와 눈의 때에 맞는 지극한 애무와 사랑 속에 살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중에 땅가시나무가 있다. 어찌나 생장력이 강하던지 일 년에도 순식간에 뿌리며 줄기를 사정없이 뻗어가는 데다 가지에 흙만 닿아도 그곳에서 이내 뿌리를 내리는 정말 대단한 생명력의 식물이다. 하지만 피어나는 꽃은 여린 듯 순결하고 아름다워 내가 좋아하던 꽃 중 하나였는데 어느 날 그는 내 가슴에 큰 못을 박고 말았다.
벌써 십 수 년 전이지만 먼 남쪽 땅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의 산소를 찾은 내게 묘에는 온통 땅가시나무가 무서울 만큼 뒤덮여 얽혀 자라고 있었다.
가져간 장비도 없어 손으로 그걸 뽑아내는데 얼마나 깊고 멀리까지 뿌리를 내렸는지 뽑아내느라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았었다.
손은 온통 가시에 수없이 찔렸고 그런데도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간들, 하나라도 남겨둘 수 없었던 것은 마치 내 몸 곳곳에 암(癌)처럼 박혀있는 것 같아 마구 몸서리가 나서였다.
그런데 다음해면 다시 그렇게 되어버려 결국 지금의 곳으로 이장(移葬)을 하게 되었지만 그 때부터 땅가시나무는 꽃과는 무관하게 왠지 꼭 제거해야 될 것으로 느껴졌다.
시골에는 내 몫의 작은 땅덩이가 몇 평 있다. 농사를 지을 형편도 못 되고 하여 몇 년 전에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사다 심었었다. 기술이나 지식도 없이 심어놓은 것이어서인지 다음 해에 반 수 정도만 살아났고 그 다음 해엔 또 몇 그루가 말라버리더니 지금은 생명력이 강한 놈 삼십여 그루만 버티고 서있다.
하지만 지난봄에 가보니 나무보다도 키가 더 큰 풀들이 자기들 세상인 양 마구 자라고 있고 그 사이에서 의붓자식인 양 주눅이 든 채 꽃이라고 피워내고 있는데 어찌나 그게 마음이 아프던지 그냥 등을 돌리고 말았었다.
그런데서 과일이 열리면 얼마나 열리겠으며 열린 데야 제대로 자라기나 하겠는가. 어린 풋사과 몇 개 맛보고 매실이니 자두니 오돌개니 제가 그런 나무라고 알리는 정도에 만족했던 지난 해였다.
그러나 금년엔 그러면 안 되겠다 싶어 아내와 명절기간을 택해 우선 말라버린 키가 넘는 풀들을 베어냈다. 그런데 밭 가장자리엔 웬 가시나무가 그리 많던지 퇴치할 엄두도 내지 못 하게 했다.
헌데 순간 어머니 묘소를 덮었던 가시나무가 생각나면서 그냥 놔두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급기야 토벌작전을 펴게 되었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아내의 도움도 받으며 곡괭이로 파내고 톱과 낫으로 자르면서 가시나무와의 전쟁을 하는데 끝이 없다.
그러는 중에 조금씩 요령도 생겨났다. 한 번에 뽑히지는 않지만 뿌리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니 완전히 뽑혀지는 것이었다.
한나절을 꼬박 가시나무 제거 작업을 했다. 나중엔 손목도 손가락도 힘이 다 빠져 잡아 뽑을 힘이라곤 남아있지도 않는데 그래도 어지간히 해치웠구나 하는 생각에 속에서는 뿌듯한 자랑스러움이 올라왔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60년 가까이 살아온 게 다 수많은 이런 가시나무와의 전쟁이지 않았을까 싶다.
참으로 막막하던 날도 있었다. 젖도 나오지 않는 엄마는 우는 아기를 등에 업고 흔들어 주며 보리쌀이 더 많은 혼합정부미에서 쌀알을 골라내어 그걸로 아기의 맘죽을 끓여 먹이며 생명의 힘이 얼마나 모질고 강한 것인가를 몸으로 익혔다.
그 때의 아이가 결혼을 하여 지금은 지구 반대편 나라에 선교사로 가있다.
땅가시나무 뿌리를 하나씩 잘라내고 뽑아내며 가시에 찔리면서도 그 일을 해내는 것과도 같이 산다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 가는 숙제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수년을 묵어 팔뚝만큼 굵어진 가시나무에선 먼저 가시를 떼어내고 작업을 할 만큼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잘라내면 뿌리에서 또 싹이 나올 테니 어떻게든 뿌리까지 제거키로 했다.
그렇게 애쓰는 모습 속에서도 나는 세상을 지혜롭게 살기 보다는 오히려 무지막지하게 부딪히며 사느라 유난히 가시에도 많이 찔리고 더 힘도 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뽑아낸 가시넝쿨이 작은 산이다. 놔두었다 마르면 태워버려야지 마음을 먹고 있는데 눈에 양심 없이 밭을 가로질러 다녀 생겨난 길이 보인다. 옳거니, 뽑은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하면 되겠구나 싶어 끌어다 밭 가장자리에 걸쳐놓으니 이건 아주 훌륭한 자연울타리가 된다.
태우는 수고를 안 해도 되고 울타리가 되어 좋고 결국 가시나무도 쓸 곳에 쓰니 유용한 것이 되지 않는가. 세상은 그렇게 살기 나름이고 그게 삶의 맛이고 요령이리라. 금년에는 그래도 조금은 자신감 있게 과일나무들이 잎을 피우고 열매도 열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팔도 다리도 허리도 말을 듣지 않는다. 언제 내가 일을 해봤던가. 요령도 없이 의욕만으로 가시나무와의 싸움을 했으니 가시나무는 뽑혔다지만 이미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필시 여러 날 고생을 할 것 같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럴 거였다. 무리하는 건 참 바보스런 짓이다. 그래서 순리란 말이 매사에 통용되는 것이리라. 차근차근 무리가 되지 않게 일을 했더라면 이렇게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자업자득이다.
좀 더 노련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그렇고 전에 이런 일을 해봤다면 요령도 생겼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순전히 의욕만으로 억척스레 덤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일의 이치, 열정만으로 힘만으로 한다는 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 제초기 생각도 했다. 이럴 때 기계의 힘을 빌린다면 훨씬 수월할 텐데. 그러나 그 또한 이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랴.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어도 정작 필요할 때 없으면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시나무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높다/하늘은 높다/높아도 너무 높다/늦었지만/꽃가지를 뽑아서 하얀 꽃을 틔워보았다/ 용을 써도 나는/세상에서 제일 낮다/낮아도 너무/낮다/ ‘김안로’의 시 ‘땅가시나무’
나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내려다보며 살지는 않았을까. 땅가시나무는 그래도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의 낫에 잘려 나갈지 모를 자신을 조심스레 건사해 오지 않았던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란 비굴하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낮아지는 게 필요하리라. 아마도 내가 대부분 다 뽑아냈다 하지만 분명 날이 풀리고 나면 남아있는 아주 작은 실뿌리, 미처 내가 발견치 못했던 줄기에서 분명 싹이 나고 이내 죽죽 뻗어나가는 놈도 있을 게다. 그게 생명력이니까 말이다.
생명력이란 말은 참으로 아름답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살아난 땅가시나무에서 피어난 꽃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는 행복을 맛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정확히 땅가시나무의 학명이나 이름도 모른다. 어디선가 들줄장미라고 읽었는데 그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부르기 쉬운 표현은 그냥 찔레꽃나무다.
아무려면 어떠랴. 땅가시나무를 뽑아내며 내 삶의 이야기를 그와 나누는 이 또한 삶이요 작은 행복이다. 그는 그로 있겠고, 나는 나로 있을 게다. 그는 그렇게 생명을 부지하며 꽃을 피우고 나는 나대로 내 일을 할 게다.
그와 나는 서로 원수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국제펜클럽 심의위원.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수필가협회․수필문학진흥회․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수필․수필세계․건강과 생명 편집위원.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살아있음은 눈부신 아름다움입니다> <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 <숨어있는 향기> <서서 흐르는 강> <기다림의 꽃> <문학에게 길을 묻다> 외 nulsae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