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들/마음의 향기

[스크랩] [최원현] 수필가가 감동한 명수필/ 박규환의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수필과 비평 2013.3월

늘샘 2014. 1. 26. 23:53

2013년 3월 수필과 비평(통권 137호) p.p.231-241

수필가가 감동한 명수필 ③

박규환의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가장 오래 남는 향기

 

최 원 현(nulsaem@hanmail.net)

 

 

봄이란 자연 질서 가운데 가장 반갑고 신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은 듯 까맣게 변해버렸던 땅이며 나무가 어떻게 봄이 된 것을 알고 싹을 틔워 올릴 생각을 하고 언 땅을 녹여서 생명들은 불러내는지 신기하고 가상하다.

 

꽤 오래전 시골에 과일나무 몇 그루를 심었었는데 다음해 봄 장모님께서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과일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과일나무에 꽃이 핀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저러시나 생각하고 있는데 장모님은 그냥 꽃이 핀 것이 아니라 제가 어찌 사과나무이고 복숭아 나무인지를 알고 사과꽃, 복숭아꽃을 피웠느냐는 것이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피는 것이 아니라 제가 피워야 할 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확실하게 그 꽃을 피워낸 나무가 기특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우린 일상에서 주어지고 되어지는 일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고맙다거나 신기해하지도 않는다. 귀하다거나 감사히 생각도 않으며 그래서 늘 하찮게 여긴다. 그렇게 어제 한 약속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인간들이니 저 하찮아 보이는 나무가 그것도 길고 긴 겨울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까맣게 변해있던 것이 어떻게 이맘때쯤이라 하여 후닥닥 싹을 틔워내고 꽃을 피워내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봄 자체가 기적이다. 봄이라 입 속으로 되뇌기만 해도 풀 향기 꽃향기가 입 안 가득 고이고 어디선가 벌 나비가 날아드는 환상에 젖을 만큼 봄은 신비롭고 놀랍다.

그런데 박규환 선생의 봄은 안 그랬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쩌면 나도 내 삶의 마지막 봄을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아무리 봄이 희망이고 생명이라도 그 봄을 마지막으로 맞는다면 그게 어찌 희망이고 생명이랴. 그래서 선생의 수필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를 생각하면서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읽다보면 안타까움 가득 선생의 심정이 더욱 잘 이해가 된다.

 

박규환 선생은 이 시대가 낳은 참 수필가다. 이만한 공감과 감동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필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있는가.

 

선생의 호는 모헌(慕軒)이다. 1916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해방 후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후학을 길러내다가 1982년 전남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은 영문학자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던 선생이 왜 영문학자로 변신했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생의 수필 작품들을 보면서 문학지향적 취향과 기질이 경제학자보단 영문학자 쪽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매원 박연구 선생이 어느 날 박규환 선생의 수필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으셨다. 책을 보내주셔서 읽었다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하시며 “수필 좋지?”하셨다. 웬만해선 좋다고 안 하시는 매원 선생인데 모헌 선생의 수필엔 “좋다.”를 연발하셨다.

모헌 선생은 병생 병치레를 하셔서인지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매원 선생이 좋다 좋다 하는 그런 수필을 쓰면서도 모헌 선생은 늘 ‘어쩌다 쓴 글장난’이라며 자신의 수필을 희필(戱筆)로 여겼다. 글을 하찮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겸손하셨다. 그런 그분에게 1993년 제6회 현대수필문학상 대상이 주어졌다. 웬만한 수필가들도 박규환이란 수필가를 아는 이가 드물 때였다. 그런데 그냥 수필문학상도 아닌 대상이었다. 이 대상은 1977년 제1회 금아 피천득 선생이 받으신 것을 시작으로 16년이 되는 그때까지 단 5명(피천득, 이희승, 김소운, 김태길, 차주환) 밖에 수상하지 못한 권위있는 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을 박규환 선생이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몇 편만 읽고 나면 금방 당연히 받을 만한 분이었음을 이해할 것이다.

 

1990년 선생은 아내와 사별을 한다. 서울 불광천변의 10년 중 3년을 아내와 함께한 상태였다. 그런데 선생의 수필은 그 후 더 중후해진다. 노인, 고독, 삶, 죽음 등 빤한 내용들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데도 전혀 가볍거나 식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격이 있는 수필로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자연의 질서와 삶의 질서를 하나로 보며 세상의 질서도 거기에 합류하길 바라는 선생의 철학과 인생관이 담긴 내용이다. 피고 지는 꽃들의 섭리, 오고 가는 생명의 질서, 태어나고 죽는 삶의 철학이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진다. 지난한 삶을 살아온 자만의 달관한 느낌이며 아쉬움이며 반성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까 하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자포자기가 아니라 순명이다. 아름다운 받아들임과 때를 앎이다. 내가 아는 때, 너희도 알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그런 선생의 수필을 읽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가득찼다. 난 편지를 드렸다.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에서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다시 봄을 기다리며>를 쓰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은 당신에게 몇 번의 봄이 남아있건 주어진 삶에 순명코자 하셨다.

 

저는 나이도 많고 오랜 병고(病苦)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제가 쓰는 수필이란 것도 할 일 없으니까 세월 보내는 방편(方便)으로 간혹 희필(戱筆)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저 누구에게 편지 쓰는 셈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수필다운 글이 나올 리 없습니다.

(1996. 1. 23. 편지 중)

 

선생은 그렇게 겸손하셨고 어떤 욕심도 갖지 않으셨다.

 

선생은 2003년 세상을 뜨셨다.

 

2003년 12월 23일 돌아가시어 성탄절날 발인을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름답게 퍼지는 그 축복의 날에 선생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88세. 미수(米壽)였다. 그즈음 난 가장 바쁜 때이기도 했지만 선생의 부음을 듣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되어 얼마나 죄송하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돌아가시기 3개월여 전 통화를 했었다. 2003년 9월 말경 한국현대수필작가 대표작선집으로 나온 <숨어있는 향기>란 선집을 보내드렸는데 내가 직장에 나가 있는 사이에 집으로 전화를 하셨던가 보다. 책 잘 받았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셨단다. 저녁에 들어와서 전해 듣고도 너무 늦어서 전화를 드리지 못하였는데 다음 날 또 전화를 하셨더란다. 아무래도 전해달라고 하는 것도 인사가 아닌 것 같아 직접 통화라고 하려고 다시 하셨단다. 그러나 그 전화도 내가 받지는 못 했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조금 일찍 집에 들어왔는데 또 전화가 왔다.

 

선생께선 숨이 가빠 하셨다. 글을 쓰는 사람이 몇 자라도 펜으로 써서 축하와 감사를 해야 도리인데 병중에 누워 있어서 그러지 못해 목소리로라도 직접 축하를 하고자 하셨단다. 그러면서 일어날 수도 없어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여 누워서 전화를 하고 있는데 이해해 달라고 하셨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감사하고 부끄러웠다. 아들 벌의 후배 수필가인데 그토록 병고 속에서도 치하를 해 주시려는 그 마음은 ‘너도 이렇게 해라.’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다.

 

수필은 품격의 글이요 인격의 글이다. 모헌 선생의 그런 삶의 자세, 글을 쓰는 이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배려는 선생의 수필이 바로 그런 결정체였다. 작품 속에 작가의 인격이 투영되거나 녹아나는 수필, 특히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읽다 보면 선생이 살아오신 삶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며 보여진다.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말은 이런 때,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일 것 같다. 조금은 길고 사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지만 난 선생의 이 수필을 읽고 있으면 다정하게 편지를 써서 보내 주시고 아픈 중에도 전화를 걸어 격려를 해 주시는 선생의 인품 곧 ‘사람됨’이 선연히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좋다.

 

한 편의 수필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 것은 가슴에서 가슴으로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읽고 있으면 그분의 삶의 순간들이 자란자란 전해져 온다. 그리고 조곤조곤 말씀이 되어 ‘그리 살아라.’고 말한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너희는 더 늦기 전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도 들린다. 좋은 수필의 힘이다. 선생은 그렇게 가장 오래 남는 향기로 수필 <다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남기셨다.

 

 

<평론가 최원현 소개>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착문예원장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사)한국수필가협회 감사, 한국수필작가회장(역임)

수필세계, 좋은문학, 에세이포레, 건강과생명 편집위원

한국수필문학상, 동포문학상대상, 현대수필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수상 외

수필집 : <날마다 좋은 날>, <문학에게 길을 묻다> 등 13권.

출처 : <수필과 인생>, E-Essay
글쓴이 : 박경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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